다산함께읽기

사람을 끄는 인간의 향기

문근영 2010. 1. 26. 07:51

다산의 학문이 깊고 넓었음이야 이미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그러나 다산의 인품이나 인격 및 인간적 향기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못합니다. 좋은 신분의 가문에서 태어나 천재적인 두뇌로 과거에 급제하여 때만 잘 만났다면 기득권을 유지하며 고관대작에 올라 승승장구로 모두가 부러워할 삶을 살아갈 처지였으나, 때도 잘 만나지 못했고 주류에서 벗어난 당파에 속했던 이유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 겨우 살아나 18년의 긴긴 유배생활을 보내야 했던 슬프디 슬픈 일생이었습니다.

그런 고뇌와 고통 속에서 익어진 다산의 인품이나 인격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향기가 있었는지, 그를 따르다 인격에 매료된 주변 사람이 많기도 했습니다.

   대밭 속의 부엌살림 중 한분에게 의지하니                  竹裏行廚仗一僧
   가엾은 그 중 수염이며 머리털 날마다 길어지네           憐渠鬚髮日
   이제 와선 불가계율 모조리 팽개친 채                        如今盡破頭陀律
   싱싱한 물고기 잡아다가 국까지 끓인다오                   管取鮮魚手自蒸
                                                                                (「茶山花史」)

강진 읍내에서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기자 산속의 정자에서 취사문제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을의 윤씨네 집까지 내려와 식사를 하고 다시 산으로 오르는 불편이 있었습니다. 이걸 안 산 너머 만덕사의 젊은 스님 한 분이, 평소에 다산의 인격과 학문을 사모하던 이유로 자청해서 초당 곁에 움막을 짓고 기거하면서 부엌을 만들어 식사를 올려 바쳤다는 것입니다. 움막에서 밥 짓는 일을 하다 보니 수염이나 머리를 깎지 않았고, 불교의 계율까지 어겨가면서 생선까지 끓이고 요리해서 바쳤다는 것입니다. 초당 아래 마을의 고로들에 의하면 지금이야 흔적도 없지만 해방 뒤까지도 움막의 터가 남아있었다고 했습니다.

다산에게서 주역과 시를 배우고 논하면서 술까지 즐겼던 뛰어난 학승 혜장선사가 다산에게 반했고, 그 젊은 스님까지 다산에게 취사의 시중까지 들었던 것으로 보면, 그의 인간적 향기가 어느 정도였었나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시 한편으로만 남아 있을 뿐, 그 스님에 관한 기록은 어디에도 한 마디가 없습니다. 다산에게 글도 배우고 시도 배워 높은 수준에 이르렀으리라 믿어지건만, 기록이 없으니 애석할 뿐입니다.

박석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