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에 대하여

문장에 대한 칼날 같은 가르침

문근영 2010. 1. 25. 10:28

문장에 관해 우리가 꼭 새겨야 할 내용이 있어 여기에 올린다.

아래의 글은 샘의 글이 아니라 칼럼니스트 방석순 선생의 글이다.

 

글을 짓는다는 일

방석순

 

흥선대원군과 그가 애써 권문세가를 피해 며느리로 택했던 민비의 정권 쟁탈전은 구한말 역사의 가장 큰 줄기를 이룹니다. 그 와중에 흥선은 청나라에 끌려가고 민씨는 궁중에서 일본 낭인에게 살해되는 비운을 맞습니다. 이씨왕조도 더욱 급격히 무너지고 맙니다.

 

일인들에 의해 억지 황제 노릇도 해보았지만 고종은 그 아버지와 부인이 벌이는 외세 줄타기에 한숨으로 날을 지새운 유약한 군주였습니다. 즉위 19년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배후로 지목된 아버지 흥선이 청에 붙잡혀가 4년 동안이나 억류되자 불효를 한탄하며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고종은 마침내 ‘조선의 마지막 문장’ 이건창을 불러들여 당부합니다. “그대의 문장으로 청인들이 한 글자를 볼 때마다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하라”고.

 

영재(寧齋) 이건창(李建昌). 15세에 급제하고 19세에 옥당(玉堂)에 들어간 이건창은 탐관오리를 적발하고 어려운 백성을 구휼해 송덕비까지 세워진 강직한 관리였습니다.

 

강화도령에서 이조 25대 임금에 오른 철종 즉위 3년(1852년) 이건창은 바로 그 강화도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판서 벼슬을 내어놓고 향리에 묻혀 살던 할아버지 이시원(李是遠)으로부터 학문을 익혔고, 이시원이 고종 3년(1866년) 병인양요에 의분을 못 이겨 자결하자 그 충절을 기려 실시된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오르게 됐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건창은 정치보다 학문과 문장에 더 뛰어났던, 조선조가 자랑하는 마지막 학자요 문장가였습니다. 서장관으로 청에 따라온 그의 문장력에 청 관리들조차 “그대에게 내 자리를 내줘야 할 판”이라며 놀라워했다고 합니다.

 

다산 정약용은 자신의 비문까지 미리 써 두었지만 이건창은 시문집 명미당집(明美堂集)에 스스로를 회고하는 시문집 서전(詩文集 敍傳)을 남겨 어지러운 시대를 살았던 자신의 일생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시문에 관한 자신의 의견,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와 소회도 밝히고 있습니다. 글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은 무서울 정도로 엄격한 ‘의로움’입니다.

 

이건창이 글벗의 청에 못 이겨 밝힌 작문의 기본은 이 시대에 들어봐도 오뉴월 몽롱해진 머리에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버쩍 들게 됩니다. “마땅히 삼가 사양해야 할 일이나 그 또한 청을 소홀히 여기는 것이 되는지라 경험을 들어 고명에 보답한다”며 그는 이렇게 문장의 규범을 밝히고 있습니다.

 

“문장을 지을 때에는 반드시 먼저 뜻의 뼈대를 얽어야 한다. 또 문장에 그 뜻이 관통하게 하여 분명하고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쓸데없는 말은 피해야 하고 속어 사용은 꺼릴 이유가 없다. 오직 바른 뜻을 놓쳐버리는 일, 하고자 하는 말을 빠뜨리는 일을 염려해야 한다.

 

문장에 세우고자 하는 ‘주된 뜻[主意]’이 있다면 반드시 이에 ‘대적하는 뜻[敵意]’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대적하는 뜻’으로 수차 공격해도 ‘주된 뜻’이 꺾이지 않아야 그 뜻이 더욱 확고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만약 둘 사이에 현격한 우열이 없다면 훌륭한 글이 될 수 없다. 마땅히 둘 다 버려야 할 것이다.뜻이 확립되고 나면 말을 다듬어야 한다. 자기의 말은 쉽게 해 의혹됨이 없게 해야 하고, 남의 말은 근거를 밝혀 혼란됨이 없게 해야 한다. 말에 싣고자 하는 뜻과 뜻을 담고자 하는 말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뜻에 말이 맞지 않으면 옹졸하게 되고, 말에 뜻이 맞지 않으면 어지럽게 된다.그렇게 했다고 해서 어찌 내 글이 잘 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지은 글을 던져서 마음에 두지 말고 며칠이 지나 글에 대한 정을 씻어버린 후 남의 글처럼 엄정히 본다면 옳고 그름이 바르게 보일 것이다. 그때도 그른 것이 보인다면 버리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이건창은 “글을 많이 읽고 써보는 것 외에 작문의 비법은 없다”고 말합니다. 또 “많이 짓는 것은 많이 고치는 것만 못하고, 많이 고치는 것은 많이 지워버리는 것만 못하다”고 합니다. “세상 일을 전폐하고 문장에 전념해야 한다”는 그 앞에서 더 이상 논할 말을 잊게 됩니다. 그가 세운 엄한 기준을 생각하면 함부로 글을 쓴다고 말하는 일조차 두려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