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탐방

시인 황인숙

문근영 2010. 1. 25. 08:17

칼로 사과를 먹다 /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깔끝으로
한 조각 찍어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황인숙 시인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전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4년 〈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1988, 문학과지성사) 〈슬픔이 나를 깨운다〉(1992, 문학과지성사)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1994, 문학과지성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1998, 문학과지성사)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나는 고독하다〉(1997, 문학동네) 〈육체는 슬퍼라〉(2000, 푸른책들) 등이 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지붕 위의 사람들〉(2002, 문학동네)이 있다.
1999년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 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인 랭보  (0) 2010.02.22
시인 반칠환  (0) 2010.01.26
시인 이승훈  (0) 2010.01.20
시인 이향아  (0) 2010.01.18
시인 김혜순  (0) 2010.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