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이石耳
정용기
봄밤, 소쩍새가 내내 운다.
몸져누운 절벽 하나가 밤을 새워 앓는다.
절벽도 귀가 있어서
구름 흘러가는 흔적에도 애가 달고
천둥 번개에도 소스라쳐 떨쳐 달아나고 싶고
암팡진 여자를 보면 따라나서고 싶어 안달이지만,
머나먼 광년을 달려온 별빛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를 마음에 다잡아 새기고
하룻밤 묵으러 왔다가 천년만년 눌러앉은
소쩍새 울음도 켜켜이 누르고 눌러 왔을 것인데
석이버섯이 저녁 밥상에 오른 봄날 이후
귀를 잃고 안절부절못하는 절벽이
귀가 먹어 버린 낭떠러지 하나가
밤마다 찾아와서 울다가 간다.
소쩍새가 곡비처럼 우는 봄밤,
저렇게 절벽 앞에서는 누구나 절박해지는 것이다.
『애지』 2017년 가을호.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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