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한 시집 『퍼즐맞추기』
-도시와 시간의 모서리에서, 퍼즐 맞추는 복잡하게 북적대는
시간표 틈바귀에서, 용케 살아남아, 솟대 끝에 소원 하나 물고 하늘로
비상한다.송태환의 시는 우리 현대인의 일상에서 짜낸 기적 같은 풀빛 희망이다.가슴의 사막에서
자연과 고향에의 향수를 잃지 않은 아직 따스하고 신선한 목소리!
-추천사: 민 용태(고려대 명예교수)
속눈썹 틈 일렁이던 졸음이
새벽 어스름에 떠밀려가는
계곡 얼음이 발목 아래서
투명 물방울로 건너뛰는
씩씩대는 땅벌레처럼 두 팔로
쪽파 새순이 흙을 뒤엎는
흰나비 유충이 꽃눈에 기대어
연초록 햇살 허물 갈아입는
굴뚝새 분주히 지저귀며
일찌감치 하루 일감 펼쳐놓는
유리 전구처럼 부푼 도라지 봉오리
다섯 조각 빛으로 깨어지는
허공을 기어오른 깨알 같은 물방울들
무지개 걸개그림 턱 내다거는
퍼즐 맞추기/송태한
오전엔 사무실 내근
찬바람 새어드는 출입문 앞
서류 파일 어질러진 책상 모니터와 씨름하다
점심 때우고 오후엔 관내 출장 다녀오기
수첩에 빼곡한 하루를 마감하고
비공식 저녁 일정은 직사각 승객 시루 속
지하철 한 귀퉁이에 기대어 놓기
부르튼 짜장 면발이 된 퇴근길 몸에
머릿속 기억은 분실물 투성이
듬성듬성 이 빠진 콜라주
정신마저 쓰러지지 않게 손잡이에 꼬옥 묶어
촘촘히 세워 놓았다가
내리는 역에선 밀려나갈 때 방향주의
횡단보도 신호등 앞에선 우선멈춤
재건축 대상 주공아파트 오층 계단을 한 차례 쉬고
올라가 현관문 비번 눌러 열고
비좁은 화장실로 데려가
얼굴과 손발 비누로 박박 씻겨서
옥돌 매트 깔린 레고 블록 침대
아내 옆 빈 칸에 가로누이고
좌우 테두리 가지런히 맞추어
내 몸뚱이 가까스로 미라처럼 끼워 넣고
눈꺼풀 지그시 눌러 감겨놓은 뒤
사각 방 무대 위 하루의 조명을 일제히 끈다
문손잡이/송태한
돌쩌귀 닳도록 넘나들던 문지방에 홀로 남아
심장 뛰던 그리움과 가슴 찡한 작별의 틈새에 박혀서
사랑의 상흔처럼 문손잡이는 벽을 움켜잡고 있네
일자산/송태한
알프스나 킬리만자로가 아닌
백두대간도 멀찌가니
서울과 하남의 틈새기
아이 포대기만 한 일자산에 오른다
설악과 태백의 산마루엔 구름 걸리고
바람마저 비에 젖어 돌아서지만
일자산은 어느 누구 길을 가로막거나
깊은 골짝을 파 놓지 않는다
천길 벼랑 절절한 폭포 하나
어깨에 짊어지지 않았지만
소꿉장난 병정놀이 같은 발걸음에도
약초밭에 야영장, 둔굴 일화 등 재여둔
한두 아름 제 속내를 곧잘 드러낸다
구름 위로 솟은 가파른 정상을 오르려
산비탈에 흘린 시간만치
어진 눈높이로 강굴강굴 실타래 풀 듯
느려도 한 걸음씩 다가서는 오솔길 하나도
눈물 감춘 우리네 숲길에서
얼마나 가슴 저민 순간인지
일자산은 잠자코 낮은 손을 내밀고 있다
송태한 시집 『퍼즐 맞추기』
(출판사:천년의 시작, 천년의 시인선 064)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60212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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