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가을 (외 2편)
신달자
한옥 기와 모서리가
맨드라미 빛깔로 물들며 솟네
이 집 처마와
저 집 처마가
닭 벼슬 부딪치듯
사랑싸움을 하네
알배기 햇살
쏟아지는 갈 오후
한옥 뒷마당에도
따뜻한 햇살 뒹구네
북향집
남(南)을 등지고
삼청공원 눈으로 오르는데
여명의 빛
창 덮은 한지 사이로 흘러라
곡진한 눈치를 떠오르는 햇살이 알았는지
둘러 둘러
북향 내 집 앞니만한 뜰에도
설핏 내리더라
푸릇한 새벽빛이
잇몸처럼 붉어지더라
헛신발
여자 혼자 사는 한옥 섬돌 위에
남자 신발 하나 투박하게 놓여 있다
혼자 사는 게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남자 운동화에서 구두에서
좀 무섭게 보이려고 오늘은 큰 군용 신발 하나
동네에서 얻어
섬돌 중간에 놓아두었다
몸은 없고 구두만 있는 그는 누구인가
형체 없는 괴귀(怪鬼)
다른 사람들은 의심도 없고 공포도 없는데
아침 문 열다가 내가 더 놀라
누구지?
더 오싹 외로움이 밀려오는
헛신발 하나
—시집『북촌』(20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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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 1943년 경남 거창 출생. 1964년《女像》여류신인문학상 당선, 1972년《現代文學》에 박목월 시인 추천으로 등단. 시집『봉헌문자』『雅歌』『아버지의 빛』『오래 말하는 사이』『열애』『종이』『살 흐르다』『북촌』등.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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