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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달자 시집 『북촌』- 북촌 가을 외 2편

문근영 2018. 12. 20. 02:36

북촌 가을 (외 2편)

 

  신달자

 

 

 

한옥 기와 모서리가

맨드라미 빛깔로 물들며 솟네

이 집 처마와

저 집 처마가

닭 벼슬 부딪치듯

사랑싸움을 하네

 

알배기 햇살

쏟아지는 갈 오후

한옥 뒷마당에도

따뜻한 햇살 뒹구네

 

 

 

북향집

 

 

 

남(南)을 등지고

 

삼청공원 눈으로 오르는데

 

여명의 빛

 

창 덮은 한지 사이로 흘러라

 

곡진한 눈치를 떠오르는 햇살이 알았는지

 

둘러 둘러

 

북향 내 집 앞니만한 뜰에도

 

설핏 내리더라

 

푸릇한 새벽빛이

 

잇몸처럼 붉어지더라

 

 

 

헛신발

 

 

 

여자 혼자 사는 한옥 섬돌 위에

남자 신발 하나 투박하게 놓여 있다

 

혼자 사는 게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남자 운동화에서 구두에서

좀 무섭게 보이려고 오늘은 큰 군용 신발 하나

동네에서 얻어

섬돌 중간에 놓아두었다

 

몸은 없고 구두만 있는 그는 누구인가

형체 없는 괴귀(怪鬼)

다른 사람들은 의심도 없고 공포도 없는데

아침 문 열다가 내가 더 놀라

누구지?

더 오싹 외로움이 밀려오는

헛신발 하나

 

 

                           —시집『북촌』(20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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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 1943년 경남 거창 출생. 1964년《女像》여류신인문학상 당선, 1972년《現代文學》에 박목월 시인 추천으로 등단. 시집『봉헌문자』『雅歌』『아버지의 빛』『오래 말하는 사이』『열애』『종이』『살 흐르다』『북촌』등.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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