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외 2편)
문태준
새떼가 우르르 내려앉았다
키가 작은 나무였다
열매를 쪼고 똥을 누기도 했다
새떼가 몇발짝 떨어진 나무에게 옮겨가자
나무상자로밖에 여겨지지 않던 나무가
누군가 들고 가는 양동이의 물처럼
한번 또 한번 출렁했다
서 있던 나도 네 모서리가 한번 출렁했다
출렁출렁하는 한 양동이의 물
아직은 이 좋은 징조를 갖고 있다
사무친 말
나는 한동안 병실에서 생활했다 돌밭 같은 눈 메마른 손 헝클어진 채 자란 머리카락 누덕누덕한 시간들 앞뒤 없는 곡경(曲境) 속에서
희망을 끊어버리고 연고 없는 사람처럼 빈들빈들 돌아다녔다 축축하게 비 오는 어느날 그가 내게 말했다 뭐든 돋아 내밀듯이 돋아 내밀듯이 살아가자고
어떤 부름
늙은 어머니가
마루에 서서
밥 먹자, 하신다
오늘은 그 말씀의 넓고 평평한 잎사귀를 푸른 벌레처럼 다 기어가고 싶다
막 푼 뜨거운 밥에서 피어오르는 긴 김 같은 말씀
원뢰(遠雷) 같은 부름
나는 기도를 올렸다,
모든 부름을 잃고 잊어도
이 하나는 저녁에 남겨달라고
옛 성 같은 어머니가
내딛는 소리로
밥 먹자, 하신다
문태준 /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고려대 국문과와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處暑)」 외 9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맨발』『가재미』『그늘의 발달』『먼 곳』, 산문집『느림보 마음』, 시 해설집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2』『우리 가슴에 꽃핀 세계의 명시 1』『가만히 사랑을 바라보다』 등.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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