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여수해양문학상 시부문 대상 수상작품>
붉다는 것에 대하여
류순자
어둑한 귀가 길
대문 가까이 왔을 때
친구같이 뚱뚱한 함박눈이 내게 온다
대문 안으로 나랑 같이 들어오는 함박눈은
나하고 잘 통하고 웃는 든든한 친구처럼 반갑다
항상 잠긴 현관문 열쇠를 열고 들어와
문을 딱 닫는데 혼자다
문이란 항상 사람이 나갈 수도 있고
들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생각하며
친구 맞이 찻자리를 마련하였다
사람 들어 올 시간이 걸려서 물은 다 끓었다
다관물소리를 맑게 들으며
세잔을 따랐다
한잔은 정적에게
한잔은 종일 비워둔 공간에게
한잔은 현관문으로 누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나에게
여수동백꽃이 붉은 이유가
<제14회 여수해양문학상 시부문 가작>
新 몽유도원도
한교만
꽃잎 펄펄 흩날리는 어느 봄날이었나. 나른해진 강기슭에서 나는 꽃이 활짝 핀 복숭아나무
몇 그루를 수목담채로 화폭에 그리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작은 배 한 척 인기척도 없이 눈앞을
스치듯 지나갔다.
손을 흔들어 안부를 물었으나 은자隱者는 느릿느릿 노를 저어 물안개 자욱한 상류 쪽으로
사라지고 채 마르지 않은 축축한 복사꽃들이 배가 지나간 흔적을 덮어주고 있었다.
조각배가 지나간 물이랑을 지우려 애써 낙화하는 붉은 꽃잎들.
나는 붓놀림도 잠시 잊은 채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수시로 잃고 캄캄한 색조의 하류를 향해
떠내려갔다.
사흘 만에 내통한 바깥세상은 막 피기 시작한 봄꽃구경을 떠나는 함성으로 여전히 소란
스럽고,
화폭을 두루마리로 펼치자 물감이 잘 마른 복사꽃들이 안견의 낙관만을 마지막으로 남겨놓고
있다.
저쪽은, 상춘이 다 끝났는지
창밖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더 이상 번짐이 없는 배접상태의 도원桃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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