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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4 김유정 기억하기 전국문예작품 운문 당선작] 이승혜

문근영 2018. 12. 20. 02:10

[2014 김유정 기억하기 전국문예작품 운문 당선작] 이승혜

 

슬픈 이야기

이승혜 (경기 광주시)

 

 

우리는 늘 아득한 행성과 행성으로 만난다

접점 없는 궤도를 따라 어둠을 밟는다

 

아버지는 우리가 모두 숨었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잠갔고

어머니는 내 옷의 단추를 모두 잠가주고 나서야 문을 열었다

 

아버지들이 고요한 와지를 찾아 헤맬 때에도

어머니들은 밀어가 빼곡한 벽들을 달마다 허물어 내렸다

비밀에 대한 두려움이 비밀을 감춘다

허물지 못한 담장 아래서 왜 우리는 하나같이 악을 쓰며 울었을까

 

그래서 하루는 잠금쇠와 단추에 대해 물었다

너는 대답을 위해 입술을 누르는 인중을 견뎠다

침묵 사이로 아뜩하게 멀어질 때에야 말없는 속삭임을 들었다

 

우리는 행성과 행성이 만나는 순간을 충돌이라 부른다

 

 

 

 

 

 

 

 

[수상소감] “내가 시를 쓰는 힘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누군가에게 꺼내어 보이고만 싶은 감정의 이야기들이 있다.

나는 오래전에 이 소중한 이야기들을 가벼이 입 밖에 내는 순간 가벼운 이야기들이 되어버린다는 슬픈 사실을 알았고,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내게 있어 시는 언제나 어둡고 차가운 내면을 세련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다.

 

공감할 수 없다면 글이 아니다. 모든 글에 공감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은, 글이 본래 공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시에 입혀진 누군가의 공감이 내게 이런 상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내 습작노트가 아닌 다른 곳에서 내 글이 보다 많은 이의 공감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 설렌다. 김유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문학을 사랑하며, 문학과 더불어 살아갈 것이다.

 

 

[심사평] ·시조 - “관찰·관조 녹여낸 시적 변용과정 탁월

 

중등부는 뛰어난 작품이 많았다. 고등부 대상인 송민지양의 `네가 봄이런가'는 삶의 깊은 관찰과 관조가 녹아서 시적인 변용으로 이끌어 오는 과정이 탁월했다. 대학·일반부도 솜씨들이 놀라웠다. 이미지, 리듬, 이야기,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도 안 되는 것이 시()이다 보니 가능성 많은 글들을 뒤로하기 망설여졌지만, 선정된 글들은 그만큼 눈에 띄게 좋았다.

 

심사위원=박민수, 조성림, 최계선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이순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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