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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4 시와세계 신인상 시부문 당선작] 이용주 이주영

문근영 2018. 12. 20. 02:10

 

[2014 시와세계 신인상 시부문 당선작] 이용주 이주영

 

가면을 벗다 외 4편 / 이용주

 

 

나는 베란다에 서서 흔들리는 그림자로 있었다

창문은 열리고 불빛이 불면을 태우고 있었다

검은 커튼이 얇게 저며 들고 있었다

떨어진 커튼사이로 흰 손가락이 당기고 있었다

강물을 토해내는 붉은 노을을 보고 있었다

나는 떨어지는 먹장구름을 보고 있었다

저녁 무렵, 그림자만 남아 있었다

밤새 배를 움켜진 고양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차츰 가면 속으로 몸을 들어 밀고 있었다

 

 

 

안개내리는 밤이었다

 

 

혼자서 반주를 하고 있었다 봄이 다 간 여름날 나는 점 점 점 밀려드는 환생을 보았다 바람에 젖은 연주, 새하얀 꽃무리를 거닐 때 기쁘고도 슬픈 시간의 해당화, 손가락 마디가 자라 다 자란 소리를 들으며 반주를 한다 걷지도 못한 다리지만 협주곡을 짓고

 

순간, 내가 별을 내리는 것은 환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그 안개에 쌓인 밤이었다

 

 

 

내비게이션

 

 

나를 싣고 간다

트럭이 어둠을 뚫고

이정표를 안내한다

시간이 인터체인지

가로등이 스치고

포장된 도로에

횡단보도가 북적인다

 

나는 가로등을 건네

그에게 가변차선을

줘야겠어

어디로 가는 거죠

 

부호에 전율이 흐르면

손끝에 닿는

가변차선을

가로 지른다

막 노동자가 소통으로

연결된다 가고 오는

 

하루를 찾는

인력시장마다

새벽을 여는

밀림을 대기시킨다

가변차선을 가로

지른다

신축 중인

네온사인이

 

 

   

카카오톡

 

 

나의 손이 나무를 전송하고 있다

나무는 나를 전송하고 있다

네온사인 불빛, 우리는

SMS 문자로 스크린에 담아

온 메일을 열어보고 있다

 

로그인되는 내 모습에 살 냄새가 난다

 

너나할 것 없이, 이승과 저승으로

문자를 지우고 전송한다

 

여기와 저기가 다른 두 길

카카오톡 매체가 우리를 전송하는 중이다

빛이 흐르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얼굴을 구부리고

 

 

코끼리 발자국으로 생을 꾸려낸다

바람에 의해 하늘이 부러지고

건물마다 햇살이 복도에 머문다

 

빛의 옷자락이 너부시 하늘을 만들 동안

조각난 어둠으로 너부시 칼을 만들고

그림자가 어둠을 무엇이든 구부리고

 

생쥐를 너부린 밤을 만든다

빗물 흘린 창을 구부려 빛을 만들고

헐벗은 뼈를 미소로 구부린다

 

초승달이 빛나는 순간 달이 깊어진다

생은 너부린 틈새로 안부를 묻는다

달빛은 나의 얼굴을 벗어

낮이나 밤이나 수면위에 구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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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몽실 하자 외 4편 이주영

 

 

어떤 길에도 이르지 못한 오늘의 그림을 그려요 여러

색채의 물감을 덧칠하듯이

 

몽실 몽실 하자

솜털이 밖으로 밖으로 오르면

 

우린 이곳에도 있고 그곳에도 있어요

구분 되지 않는 형체로 떠돌고 있어요

푸른 하늘에서 우리도 그림들로 구분되지 않구요

손들은 같은 높이에 떠있어요 오늘의 손들을 한꺼번에

매달아봐요

 

표면으로 날아간다

그림들은 날아간다

그림들은 깨어나지 않네요

 

우린 이 푸른 하늘을 따라가요

 

표면을 열심히 그리고 있는

푸른 하늘에서 푸른 크레용의 피부를 떠올리는 것은 그림이구요

감정, 그림들이 흘러간다 한 개 두 개 다섯 개 그림들이

 

 

 

 

풀밭 위의 식사

 

 

 숲속 잔디에 머플러를 깔고 앉아있는 나체의 여인, 오른쪽 무릎과 오른쪽 팔꿈치를 세우고 얼굴을 받치고 있는 여인, 그 옆 정장 차림의 남성은 무엇을 보고 있나? 관객을 보고 있는 나체의 여인, 맞은편에 비스듬히 앉은 신사의 왼손엔 지팡이, 오른손을 뻗은 사이로 햇살이 지나간다 핑크빛 드레스의 여인이 허리 굽혀 햇살을 잡고 있다 정장을 한 남성과 나체를 한 여인의 엉덩이 사이, 빵과 바구니와 과일들이 널려있다, 프레임밖에 머물고 있는 눈동자와 눈동자들, 두 쌍의 남자와 여자,

여름날의 피크닉 아련하다

 

 

에두아르 마네 ( 1832 ~ 1883 )

풀밭 위의 식사 캔버스에 유채, 206x265cm 1832

 

 

 

 

TV, K-POP

 

 

누구의 눈을 낚을 것인가 벽에 걸린 그림, 게임은 시작된다 당신의 눈에서 오색 지느러미를 들여다본다 원더걸스, 시엔블루, 포미닛, 화면 가득 춤추는 소녀시대, JYJ, 2AM, 오빤 강남 스타일!

 

벽이 흔들린다 지느러미들 싱싱하다 서쪽하늘이 붉게 물들고 나는 깨어있고 공작새로 변신한 화면, 꼬리달린 걸 그룹, 아이돌, 눈은 레이저 광선으로 벽을 흩고 지나간다

 

 

동작과 음향들은 시계바늘로 정지되고 귀를 끌고 춤춘다

 

 

 

 

메아리의 독방

   

 

 독방에는 메아리가 산다 갈색의 눈, 하얀 창살, 눈부신 햇살을 걸치고 뛰어다닌다 아침이면 메아리는 하얀 깃털로 내 눈을 닦는다 내 눈 속의 호수, 푸른 섬강, 푸른 수평선, 돌아 갈수 없는 햇살의 독방, 유리창 밖을 본다 메아리는 푸른 창살, 유리가 된 눈, 진주가 된 눈, 내 눈의 심해, 하얀 보석, 직이는 메아리

 

 

 

사각형 동굴

 

 

투명한 사각형이 나열되어 있다

직육면체다

정사각형과 직사각형

 

원형보다 사각형에 익숙한

유리 사다리를 타고 오른다

TV, 책상 .침대, , 가구

 

동굴에는 너구리, 살쾡이, 도둑고양이

어린토끼들, 하얀 양들도 있다

사각 모서리에 상처도 받는 나,

 

네모난 창틀과 유리, 창문을 통해

창가 식탁에 앉아

맞은편 아파트를 바라본다

 

사각형 식탁위 커피향이

풍경과 저녁노을이

창가를 물들인다

 

어둠이 내리면

어느덧

유리상자속에 별이 뜬다

 

 

 

 

 

 

 

|시와세계 신인상 시부문 심사평|

 

메아리 독방, 그 안개내리는 밤이었다

 

그동안 신인의 등단 응모작을 심사해본 경험에 의하면 기준을 정해놓고 그 기준에 따라 심사해 요건을 충족한 시를 골라본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신인의 작품에는 그럴 수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한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신인의 작품이 아니라 이미 등단한 프로급 시인의 수상 작품 심사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신인의 작품은 뭐니 뭐니 신인다워야 한다. 어설프지만 예민한 촉수가 숨어있고, 천방지축 날뛰는 형국이지만 뭔가 돌파해 나아가려는 패기와 모험정신이 있어야한다. 이런 감각과 정신이 신인의 작품에 반영되었으면 충분하다.

 

2014년 전반기 <시와세계 신인상> 당선작으로 이주영의 몽실몽실 하자4편과 이용주의 가면을 벗자4편을 선한다. 두 신인의 작품에는 남의 눈치 안보고 자기 식으로 내두르는 용기와 시인의 자질인 예민한 감각도 숨어 있어 크게 믿음이 갔다.

 

이주영은 보이는 대상은 물론 안 보이는 대상도 클로즈업 시켜 마치 잡힐 듯이 묘사하는 게 특장이다. 추상적 이미지의 구상화는 아무나 쉽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그런데 이주영은 메아리의 독방에서 보여주듯 메아리라는 청각적 이미지를 푸른 수평선’ ‘내 눈의 심해’ ‘하얀 보석처럼 현란한 이미지로 다양하게 변주한다. 작품 몽실몽실 하자에서도 몽실몽실한 구름의 이미지를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져 어떤 길에도 이르지 못한 오늘의 그림을 그린다. 그것은 그림들이 깨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이 모두 흘러가게 해서 모두가 몽실몽실 하게 하는데 있다. 이렇듯 이주영은 시적 대상을 선명하고 신선한 이미지로 제시해 모두의 감정이 흘러가게 하는데 그 탁월함이 있다.

 

이용주는 이주영과 정반대의 감각을 가지고 있다. 이주영이 대상을 선명하게 묘사하려 한다면, 이용주는 선명한 대상을 흐리게 하여 동일한 시적 효과를 노린다. 안개 내리는 밤이었다에서 안개에 쌓인 밤기쁘고도 슬픈 시간의 해당화’ ‘손가락 마디가 다 자란 소리’ ‘환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으로 대상을 흐려 환상적으로 묘사한다. 작품탈출에서는 기차의 상행선과 하행선이 통과하는 모습을 기차가 가면으로 이승과 저승을 벗고있다고 묘사한 반면, 작품가면을 벗다에서는 저녁 무렵 베란다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며 황혼에 흔들이고 있는 자신을 차츰 가면 속으로 몸을 들어 밀고있다고(가면을 쓰다) 묘사했다가 제목은 정반대로 가면을 벗다로 했다. 그러니까 황혼 속 베란다에 서 있는 자신을 가면을 쓰고 벗고 있는 모습으로 연출한다. 이용주는 이처럼 이주영과 달리 대상을 환상적으로 묘사하는데 그 비범함이 있다.

 

상반된 감각을 가진 두 사람이 시와세계로 등단하게 된 것은 잡지사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두 신인의 등단을 축하하며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길 빈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지만 신인의 첫 걸음은 늘 도전이요 절망이다. 자신과 싸우고 기성을 철두철미하게 배척하고 독방에 고독하게 유폐되어야 할 것이다. 이주영은 대상의 의미 속으로 좀 더 파고들어가 의미를 철저하게 버리고 새롭게 구축하는 방법을, 이용주는 대상과 대상을 충돌시켜 탄생하는 이미지로 보다 높게 상승하는 방법을 터득하면 새로운 길이 열리리라 믿는다. 부디 대성하길

 

심사위원 김영남(시인 )

송준영(본지 주간)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이순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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