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2014 진주가을문예 시부문 당선작] 김수환

문근영 2018. 12. 20. 02:09

 

 

 

 

[2014 진주가을문예 시부문 당선작] 김수완

 

원형극장-옮겨진 의자

 

 

의자가 옮겨져 있다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 내 등을

누군가 보고 간 것이 틀림없다

미농지를 대고 그대로 옮겨 가지고

어디론가 달아났다 나는 순간

가구들을 얼른 돌려 놓고

등 없는 벽처럼 서 있었다

의자는 가끔 옮겨지기도 하니까

그자는 다시 올 것이 틀림없다

벽이 되니 등은 더욱 어두워진다

그자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나는 독극물을 해독하는 쥐처럼 몸을 뒤틀며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 내 등을

닦아낸다 닦을수록 오히려 마음 약했던

자해의 자국들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나는

거울을 보며 미농지를 등에 대고 애써

그 희미한 선 하나하나를 그려 나간다

그것은 내 시력을 달아난 그자에게

내어주는 일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겠지만

나는 조금씩 의자를 스스로

옮겨 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이순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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