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병통
내게는 평생 큰 병통이 있다. 무릇 생각한 바가 있으면 글로 쓰지 않을 수가 없다. 글로 쓰고 나서는 남에게 보여주지 않을 수 없다. 바야흐로 생각이 떠오르면 붓을 당기고 종이를 펴서 잠시도 머뭇대지 않는다. 다 쓰고 나면 스스로 아끼고 기뻐하며 조금이라도 문자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내 주장이 온전한지 편벽된지, 그 사람이 친한지 소원한지 따질 겨를도 없이 급히 전하여 펼치려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한 바탕 말하고 나서는 내 뱃속이나 글상자 속에는 한 가지도 남겨 지킬만한 것이 없음을 깨닫곤 했다. 이 때문에 정신과 기혈이 온통 모두 흩어지고 새나가서 온축하여 간직하는 뜻이 아예 없었다. 이렇게 하고서야 어찌 능히 성령을 함양하고 제 몸과 이름을 보전하여 지킬 수 있었겠는가? 근자에 조금씩 점검해 보니 이것이 모두 경천(輕淺) 두 글자, 즉 경박하고 얄팍한 것이 빌미가 된 것이었다. 이는 덕을 감추고 수(壽)를 기르는 공부에 크게 해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언론과 문채도 모두 어지러이 흐트러져 점점 천하고 비루해져서 남에게 존중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 9-92
余平生有大病。凡有所思想。不能無述作。有述作不能不示人。方其意之所到。援筆展紙。未或暫留晷刻。旣而自愛自悅。卽遇稍解文字之人。未暇商量吾說之完偏與其人之親疎。急欲傳宣。故與人語一場。覺吾肚皮間與箱篋中。都無一物留守者。因之精神氣血。皆若消散發洩。全無蘊蓄亭毒底意。如此而安能涵養性靈。保嗇身名乎。近漸點檢。都是輕淺二字爲之祟也。此不但於韜晦壽養之工。大有害也。雖其言論文采。皆狼藉離披。漸漸賤陋。不足取重於人也。
공부는 온축의 과정이 중요하다.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이고 쌓여 그것이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하나 배워 하나 떠들고, 둘 배워 둘 떠들면, 안으로 쌓여 고이는 것이 없다. 마른 땅 위로 소낙비 지나가듯 해서는 못 쓴다. 입을 다물면 기운이 안으로 쌓인다. 눈을 감아야 정신이 맑고 깨끗해진다. 재주를 못 이겨 나풀대기만 하면 한 두 번 귀 기울이던 사람도 마침내는 비루하게 여겨 거들떠보지 않는다. 무겁고 깊은 공부를 해야 한다. 묵직이 가라앉혀야지 들떠서는 못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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