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존심(主敬存心)
근세 들어 어떤 학문을 하는 자는 반관(反觀)만을 오로지 하여 이름으로 세우고, 겉모습을 꾸미는 것은 손가락질 하며 가식이요 허위라 한다. 젊고 약삭빠르고 방탕하여 마음으로 구속을 싫어하는 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온통 펄쩍 뛰면서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기거와 동작의 절도를 마음에 내키는 대로 한다. 나 또한 예전에 이 병에 깊이 걸렸었다. 늙어서까지 뼈마디가 어근버근해서, 비록 후회하나 고치기가 어렵다. 깊이 뉘우쳐 한탄할 뿐이다. 지난번 너를 보니, 도무지 옷깃을 가지런히 하고 똑바로 앉기를 즐기지 않아, 단정 장중하고 엄숙한 기색을 조금도 볼 수가 없었다. 이는 내 병통이 한 바퀴 돌아 네가 된 것이다. 특별히 성인께서 사람을 가르치실 때 먼저 외모부터 수습해 나가야만 바야흐로 겨우 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고 하신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에 비스듬히 눕고 기대서서 멋대로 말하고 어지러이 보면서 주경존심(主敬存心)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두 아들에게 부침[寄兩兒]〉 9-25
近世一種學術, 專以反觀立名, 而修飾外貌者, 指之爲假僞. 年少儇蕩, 心厭拘束者, 聞此皆躍然大喜, 遂於起居動作之節, 任情眞率. 吾亦向來深中此病, 到老筋骸不習, 雖悔難改. 甚可悔恨耳. 向見汝, 都不肯整襟危坐, 端莊凝肅之色, 未或一見. 此吾一轉而爲汝也. 殊不知聖人敎人, 先從外貌收將去, 方纔得安頓此心. 世未有偃臥側立, 胡言亂視, 而可以主敬存心者也.
반관(反觀)은 말 그대로 뒤집어 보는 것이니 삐딱이 정신이다.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보지 않고, 거꾸로 보고 반대로 보자는 것이다. 이런 삐딱이 정신 없이 맹목적인 추수(追隨)만으로는 사실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다. 하지만 반관도 제대로 해야지 설핏하게 하면 공연히 사람만 버린다. 자칫 겉멋이 들어 말투도 삐딱해지고, 태도도 삐뚜룸하고, 세상 알기를 우습게 안다. 술 먹고 주정 부리는 것을 풍류로 알고, 버릇없이 함부로 구는 것을 멋으로 여긴다. 진중한 맛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고, 경박과 경솔이 뚝뚝 묻어난다. 마음은 저만치 달아나 찾을 길이 없고, 젠체하는 건방만 는다. 반관도 주경존심(主敬存心), 즉 경(敬)을 지녀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될 때만 힘이 생긴다. 착각하지 마라. 까불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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