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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열린 문화부, 막힌 교육부 / 남영신

문근영 2018. 6. 2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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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문화부, 막힌 교육부


                                                 남 영 신 (국어문화운동본부 이사장)

지난 10월 9일은 562번째 맞은 한글날이었다. 나는 이날만큼은 조금 의미 있는 방식으로 맞이하고 싶은 생각에 청와대를 포함한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언론기관과 종합대학 등 120군데에 권고문을 보내어 각 홈페이지의 초기 입력 상태를 한글로 바꿔 줄 것을 요청했다.

국민 누구나 날마다 겪는 불편이면서 이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인데, 홈페이지에서 요구하는 신청서를 쓰거나 게시판에 글을 올리려고 한글 키를 두드리면 한글이 적히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영문 글자가 죽 입력되어 이를 지우고 한영 변환키를 누른 다음에 다시 입력하여야 하는 것 말이다. 예를 들면 ‘신청서’을 입력하면 ‘tlscjdtj’라고 적히는 식이다. 물론 당연하다는 듯이 한영 변환키를 누른 다음에 다시 입력을 하면 된다. 그러나 나는 이 점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한글 홈페이지에서 한글을 입력했는데 웬 영문 글자?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 한국의 국가 기관이나 언론 기관, 대학 등의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한글을 입력하는데 왜 영문 글자가 튀어나오게 하느냐는 것이다. 기술이 부족하다면 어쩔 수 없이 이를 감수해야 하겠지만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국가 기관이나 언론 기관, 대학의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글을 쓰는데 왜 한글 대신에 영문이 나오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체육관광부에 먼저 이 사실을 알리고 수정을 요청했더니 바로 다음날에 그 부분을 수정해 놓았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실행하지 않았을까?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자의 답신에는 미처 생각이 거기에 미치지 못해서 그랬는데 이를 지적해 준 덕에 고칠 수 있었다며 감사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에도 이를 고치도록 권하겠다고 했다. 이 답신을 받은 날 나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 가운데 국립국어원과 국립국악원은 모두 한글 입력 상태로 되어 있다.

용기를 얻은 나는 다시 청와대와 교육부 등 여러 기관에 같은 내용을 알리고 이를 수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청와대는 거듭된 나의 요청을 받고 2주일 만에 수정해 놓았다. 이제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릴 때에 한영 변환키를 누를 필요가 없어졌다. 이 밖에도 나의 요청을 고맙게 생각하고 즉시 수정해 준 기관은 국회, 국토해양부, 검찰청, 국세청, 조달청, 부산시, 충청남도, 한겨레, 동아일보 등 20기관쯤 된다. 이들 기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글을 올릴 때 한영 변환키를 누를 필요가 없어졌다. 한국인에게 한글 사용의 자유를 준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나의 이 요청을 지금껏 외면하는 기관이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유독 정말 꿈쩍도 안 하는 부문이 있었다. 바로 교육과학기술부와 서울시교육청 그리고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각 대학 등 교육 관련 부처와 기관이었다(아직 시정하지 않은 부서에는 모든 경제 관련 부서도 다 포함되어 있으나 이 기관들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않겠다). 영어 몰입 교육을 위해서는 엄청난 국가 예산과 대학 예산을 쓰면서도 한글을 자기 홈페이지에서 우선적으로 구현하는 데는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곳이 교육부이고, 교육청이고, 대학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일이다. 이곳에 이들 기관의 홈페이지를 보여 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이 기관들의 홈페이지 첫 페이지에 통합 검색이라는 검색창이 있다. 이 창에는 ‘검색할 내용을 입력하세요’라고 한글로 적혀 있다. 거기에 검색할 내용을 한글로 입력하면 한글이 나오지 않고 영문으로 나온다. 이거 정말 한심한 일이 아닌가? 이건 언어 주권의 문제이다.

교육부는 한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배려할 수 없나?

미국인들이 그들의 프로그램을 영문 입력 상태로 만들어 놓고 입력자가 반드시 영문만 입력하도록 했다면 이건 언어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성토할 일이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사는 그런 불필요한 짓을 하지 않았다. 홈페이지를 만들 때에 초기 입력 상태를 한글로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한글로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초기 입력 상태를 영문으로 방치해 놓고 한글을 입력하려면 한영 변환키를 누르게 해 놓았다. 모든 국민더러 한글보다는 영문을 쓰라고 권하는 듯하다.

우리 정부는 적어도 한국에서 한국어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한글의 소중함을 헌신짝처럼 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말과 글이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해하고 감사해하면서 인터넷 환경에서 한글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배려해야 하고 우리의 언어 주권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교육과학기술부, 서울시교육청, 서울대학교 등 우리나라의 교육 기관을 대표하는 이 세 기관에게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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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남영신
· (사)국어문화운동본부 이사장
·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원장
· 저서: <남영신의 한국어 용법 핸드북><4주간의 국어 여행>
          <국어 한무릎공부><문장 비평>
          <국어 천년의 실패와 성공>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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