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동안
장순금
한 사람이 몸속을 지나가는 동안
몸 밖은 백년이 흘렀어
시작은 책 속에 끝을 숨기고 문장으로 나를 눌러 놓았어
심야를 달리는 트럭의 깜깜 속도 속에 우리를 숨겼어
생략된 세상에서
도벽처럼 가지에 앉아 떠는 동안
바람 사이로 피로 물든 잎들을 낳았어
한 알도 부화되지 못한 잎들은 스스로 숨을 끊어
죽은 기억 속으로 들어갔어
우리는 아무도 새가 되지 못했어
죽은 기억이 죽음 같은 고요에 발이 빠져
비릿한 향내를 봄의 무덤에 뿌리고
책 속에 숨은 무수한 벽이 서로 눈물을 닦아 주며
죽은 잎들을 펄럭이고 있었어
나는 천천히 물처럼 흘러내리고
한 사람이 지나가는 동안
몸 밖은 보이지 않았어
—《문예바다》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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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금/ 1953년 부산 출생. 1985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걸어서 가는 나라』『비누의 슬픔』『조금씩 세상 밖으로』『낯선 길을 보다』『햇빛 비타민』『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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