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맨
이지담
시리아의 폐허를 배경으로 피아노 치고 있는 사내
한 장의 사진으로 본다
불씨가 날아와
컴퓨터 자판 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뒤섞이고
총 소리와 숟가락 부딪는 소리가 섞여 들린다
화분 속 난초가 죽어가고 있다
물을 자주 준 탓인가
위층에서 나는 피아노 소리에 눈을 감는다
사진 속 사내의 손가락 끝에서 새순이 돋는다
저녁이 오기 전에
웃어 줘야지 피아노 소리가 멈춘다
보이지 않은 것에서 영원을 보려고 했던 때가 있다
말을 하면 빈 깡통 소리가 난다
가족들을 안아줘야지 그 사내는
재가 된 피아노를 뒤적이며
터키를 거쳐 그리스와 오스트리아 루트를 통해 독일에 도착했다
두 아들에게 미래를 주기 위해 다시 피아노를 친다
멈춰버린 시계가 움직여줄 때까지
심장 박동을 두드려야 한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카톡방으로 모인다
식탁 위 접시에는 어슷하게 놓인 빨간 사과에서 빛이 난다
—《시와 경계》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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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담 / 전남 나주 출생.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2003년 《시와사람》신인상, 2010년 《서정시학》신인상 당선. 시집 『고전적인 저녁』.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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