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693)/ 멕시코
사카테카스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Zacatecas; 1993)
View of Zacatecas
View of Zacatecas from the cable-car that runs between its two highest hills
Pedro Coronel MuseumSanto Domingo Monastery
Temple of Santo Domingo
Facade of the cathedral
Zacatecas cathedral, built between 1729 and 1753, regarded by many as the last, and greatest, expression of the churrigueresque (Mexican Baroque) style
Zacatecas Cathedral Mexico
Main altar
Equestrian statue of Pancho Villa, atop Cerro de la Bufa, site of his greatest victory
Painting of the Toma de Zacatecas, Chapultepec Castle, Mexico City
Zacatecas in the 1880s
사카테카스 주[Zacatecas State]에 속한 사카테카스는 1546년 대규모 은광이 발견되면서 생성된 도시로, 16세기와 17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좁은 계곡의 가파른 경사면에 있는 이 도시는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답고,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로 많은 건축물들이 있는 도시이다. 1730∼1760년에 건축된 대성당이 도시의 중심부에 우뚝 솟아 있다. 건축물의 여기저기에는 유럽과 인디언 특유의 장식 기법이 눈에 띄며, 성당의 파사드(facade)에 바로크 양식이 융합된 조화로운 디자인이 이목을 끈다.
사카테카스는 과나후아토(Guanajuato)와 함께 뉴스페인(New Spain)의 중요한 광산 도시이다. 주요 은 생산지이며, 식민지와 복음 전도・문화적 팽창의 중심지였다. 고대 중심지로서의 도시 경관은 틀로 찍어낸 듯 가파른 계곡의 지형을 따라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사카테카스는 해발 2,400m의 라플라타(La Plata) 강의 좁은 계곡에 있다. 2개의 평행선으로 된 남북 도로가 남쪽을 향해 두 갈래로 갈라지며, 좁은 도로와 연결되거나 작은 광장으로 이어져 있다. 경사가 많고 지면의 높이가 다양해서 역회전 도로와 계단식 도로가 많다. 1546년에 은이 다량 함유된 산 베르나베(San Bernabe) 은광이 발견되자, 이어서 사카테카스가 형성되었다. 이후에 동일 단층에서 베타 그란데(Veta Grande)와 파누코(Panuco), 알바라다(Albarrada)의 은광이 연이어 발견되었다. 도시는 뉴스페인의 주도에서 남쪽 광산 지대로 발전했다. 지금의 산 아구스틴(San Agustin)에 최초의 교회가 들어섰고, 주요 거리인 레알 거리[Calle Real]와 지금의 아로요 델 플라타(Arroyo del Plata)를 따라 집들이 쭉 들어섰다. 다른 스페인 식민 도시와 달리, 사카테카스는 가파른 계곡에 있는 채광지와 광산을 서로 연결해야 했기 때문에 도로 배열이 불규칙하다. 은광 산업은 계속 번창해서 1550년대에 이르자 34곳의 광산이 이곳에서 성업했다. 스페인 국왕은 1588년에 도시의 작위와 문장(紋章)이 든 덧옷, 즉 옛날 기사(騎士)들이 갑옷 위에 입은 옷을 하사했다. 과나후아토에서도 은광이 개발되자, 멕시코시티와 과나후아토 및 사카테카스를 각각 잇는 은의 길[Silver Road]이 건설되었다. 1630년까지 스페인 식민지에서 생산한 은의 60%가 이 길을 따라 수출 길에 올랐다. 은 산업으로 부를 쌓은 두 도시는 공공건물과 일반 건축물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사카테카스는 마을과 대농장을 보호하고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요새를 지었는데, 이러한 요새가 지역의 경제적 중심이 되었다. 또한 이는 식민지의 발판이 되었고, 북쪽으로 기독교가 널리 퍼지는 데 유리한 작용을 했다. 처음에는 산 프란시스코 성당(San Francisco)을, 이후에는 과달루페(Guadalupe) 대학을 거점으로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에 이르기까지 70여 곳의 파견지를 관할했다. 16세기, 17세기경 사카테카스는 은의 생산량이 최고에 달했으나, 이후 과나후아토에 최고의 자리를 물려주고 박하 생산지의 역할을 이어 갔다. 1910년 혁명과 1914년 내전에도 불구하고 은 생산은 독립 이후까지 계속되었지만, 나라가 발전하고 새로운 교통 도로망 건설에서 사카테카스 지역이 제외되자 은 생산도 점차 쇠퇴했다. 경제가 쇠락하면서 도시는 원래 도시의 모습을 계속 유지해 왔다. 사카테카스 역사 지구는 15곳의 종교 건축물 단지로 이루어진다. 주로 17∼18세기에 세워진 건축물로서 산후안 데 디오스(San Juan de Dios)와 산 프란시스코 성당, 산 아구스틴(San Augustin) 성당, 산토도밍고(Santo Domingo) 성당과 수도원이 포함되어 있다. 대성당(1730∼1760)은 로마 가톨릭의 성상에 토속적인 양식과 사상을 접목시켜 독특한 파사드를 아름답게 장식한 바로크 건축물이다. 산토도밍고의 예수회 성당은 화려한 바로크 건축물인 대학과 대조를 이루면서 나란히 있으며, 차분한 아름다움을 풍긴다. 거대한 돔과 높은 탑들이 주변의 성당들과 대조를 이룬다. 지금은 이곳에 새로운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중요한 건축물은 18세기에 지은 말라 노체 궁[Mala Noche Palace]과 1834년에 세운 칼데론 극장[Calderon Theatre], 1886년에 철 구조로 세운 곤잘레스 시장[Gonzalez Market], 장미색 사암의 정부 청사가 있다. 시장과 지역의 지형을 본떠 이름을 붙인 구역에는 17세기 이전부터 내려온 일반 시민들의 정교한 도시 건축물들도 포함되어 있다. 도시 외곽에는 라부파 언덕[La Bufa]의 정상에 로지아식 관측소가 딸려 있는 패트로치니오의 성모마리아[Nuestra Senora del Patrocinio; 1882] 성역이 있고, 동쪽 경사면에는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과달루페(Nuestra Senora de Guadalupe) 신앙 선전실[Propaganda Fide]의 아포스톨릭 대학[Apostolic College; 1707]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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