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694)/ 멕시코
포포카테페틀의 16세기 수도원
(Earliest 16th-Century Monasteries on the Slopes of Popocatepetl; 1994)
Karnak
Portal of the convent of Huejotzingo
Facade of the monastery church in Tlayacapan
View of the Cathedral of Cuernavaca
View of the church facade of the monastery in Tepoztlan
San Juan Bautista monastery yecapixtla morelos
View of the cloister and bell tower of the monastery in Yecapixtla
모렐로스와 푸에블라 주[Morelos and Puebla States Municipalities]: 모렐로스 주의 아틀라틀라우아칸, 쿠에르나바카, 테텔라 델 볼칸, 야우테펙, 오키투코, 테포즈틀란, 틀라야카판, 토톨라판, 예카픽스틀라, 사쿠알판 데 아밀파스(Atlatlauhacan, Cuernavaca, Tetela del Volcan, Yautepec, Ocuituco, Tepoztlan Tlayacapan, Totolapan, Yecapixtla Zacualpan de Amilpas in Morelos). 푸에블라 주의 칼판, 우에토트싱고, 토치밀코(Calpan, Huetotzingo, Tochimilco in Puebla)는 멕시코시티(Mexico City)의 남동쪽 포포카테페틀 산비탈에는 14개의 수도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수도원들은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16세기의 지역민들을 교화해서 기독교로 개종시킨 프란시스코회, 도미니크회, 아우구스티누스회의 초기 선교사들에 의해 도입된 건축 기법의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또한 개방 공간의 중요성을 새롭게 해석한 건축 개념을 보여 주는데, 이런 건축 양식은 멕시코 전역과 그 밖의 지역에까지 널리 영향을 미쳤다.
포포카테페틀에는 뉴스페인(New Spain) 수도원 건축물만의 독특한 특징이 잘 드러나는데, 이는 넓은 앞마당에 있는 개방형 공간과 포사스(posas; 개인 예배당)가 달린 아트리움(atrium; 대개 직각형)과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했던 개방형 예배당이 건축물과의 관계를 통해 잘 보여 준다. 초기 수도원들의 건축 양식이 멕시코 전역에 영향을 미친 데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16세기 말의 멕시코 중부 지역과 남동부에서 이런 양식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8세기에 계속된 식민지 확장과 복음 전파로 그 영향력은 오늘날의 북아메리카를 넘어 대서양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확대되었는데, 대규모의 수도원 형태보다 좀 더 소규모로 조직된 ‘파견단’의 형태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이 지역은 초창기에 광범위하게 점령당했던 곳이다. 이곳은 스페인 정복 시기에 아즈텍 제국의 두 지역으로 나뉘었고, 1521년에 코르테스(Cortes)가 멕시코-테노치티틀란(Mexico-Tenochtitlan)을 포위했을 때 수많은 혈전을 벌인 곳이다. 1523년에 12명의 프란시스코회 선교사들이 멕시코에 첫 발을 내딛은 후에 1526년에는 도미니크회, 1533년에는 5명의 아우구스티누스회 선교사들이 입성했다. 선교사들은 베라크루스(Veracruz)에서 멕시코시티까지 내륙으로 이동해 그 곳에서 첫 공동체를 이루었지만,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수도 외곽으로 급속하게 이전했다. 포포카테페틀 산비탈의 남쪽 경사면에 최초의 수도원 건물을 세웠고, 1525년 쿠에르나바카(Cuernavaca)에 프란시스코회 수도원을 세웠으며, 1528년 오악테펙(Oaxtepec)에 도미니크회 수도원을, 그리고 1534년에 오키투코(Ocuituco)에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원을 세웠다. 세 종파는 이 지역에서 자신들의 교구를 세웠다. 수도원 건물들은 도시 주거지의 중심부 역할을 하기 위해 원주민의 밀집 거주지에 세웠고, 이 역할은 지금도 여전하다. 스페인 정복 이전 시대에 중요한 중심지였던 쿠에르나바카는 식민지 시대의 주도였는데, 특이하게 이 지역의 수도원은 성당이 되었다. 프란시스코 베세라(Francisco Becerra)가 설계하고 지은 쿠에르나바카의 본거지를 시작으로 프란시스코회 선교사들은 남쪽으로는 ‘뜨거운 땅[hot land]’을 향해, 서쪽으로는 산악 지역에서 멀리 이동했다. 남동 방향으로는 푸에블라를 향해 화산 지층을 감싼 새로운 길이 열리면서 어려운 코르테스의 길[Paso de Cortes]을 대체했다. 화산의 동쪽 경사면에 세운 첫 번째 수도원은 우에호트싱고(Huejotzingo; 1529)에, 그리고 칼판(Calpan)과 남쪽 경사면 토치밀코(Tochimilco)에 수도원을 세웠다. 프란시스코회가 도착하고 3년 후에는 도미니크회에서 오악테펙에 수도원과 병원 건물을 세웠다. 그리고 테포스틀란(Tepoztlan)의 테포스테코(Tepozteco) 계곡에도 세우려 했던 그들의 노력이 1560년까지 부족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런 중에 오악사카(Oaxaca)로 가는 서쪽 길이 개통되어 테텔라 델 볼칸(Teltela del Volcan)과 우에야판(Hueyapan)에 수도원 건물을 짓게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회는 프란시스코회의 동쪽 길과 도미니크회의 서쪽 길 사이에 놓인 지역을 차지했다. 오키투코에 거점을 정하고, 그곳에서 서쪽으로 토톨라판(Totolapan)과 예카픽스틀라(Yecapixtla)에 수도원을 지었으며, 더 남쪽으로는 ‘뜨거운 땅’을 향해서 아틀라틀라우아칸(Atratlauhcan), 사쿠알판(Zacualpan), 틀라야카판(Tlayacapan)에 수도원을 지었다. 아우구스티누스회는 이 지역에 가장 대규모로 수도원들을 세웠다. 1525~1570년에 이 지역에는 100여 곳이 넘는 수도원 건물들이 들어섰고, 16세기 말에는 그 수가 300여 곳에 달했다. 트렌트 회의[Council of Trent; 1567]에 의해 선교사들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성직자들이 수도원 건물들을 차지하게 되자, 모든 수도원 건물들은 교구 교회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당시 이 지역에 급속도로 퍼진 수도원 중 14곳이 새로운 양식에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요소가 포함된 고전 양식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아트리움과 교회[주로 단순한 평면에 눈길을 끄는 규모와 단일 신도석으로 구성됨], 수도원 건물들은 주로 성당의 남쪽에 있으며, 작은 뜰이나 파티오(patio) 주변에 배치되어 회랑으로 지정되어 있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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