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박시하
롤로는 영혼의 집을 옮겼다.
메이가 아팠기 때문이었다.
낯설고 낡은 부엌
금간 벽에 붙어 있던 잎사귀를 떼어내는 일을
롤로는 기도처럼 경건하고
비밀스럽게 했다.
집은 낡고 허물어져
깨진 창유리 사이로 상한 빛이 들어왔다.
아픈 메이에게 무엇이 좋을까
롤로는 정성스레 소파를 놓고
식탁을 닦았지만
여기서도 메이는 낫지 않을 것이다.
기다려도 나아지지 않으면
병은 무수한 잎을 돋울 것이다.
롤로는 잎사귀 하나를 뜯어 벽을 장식하고
잎사귀 또 하나를 뜯어 머리에 꽂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변해버린 것 같았다.
아슬아슬
창밖으로는 바다가 보였다.
찬장을 열어서 프라이팬을 꺼냈다가
검게 탄 손바닥을 꺼냈다가
기도를 얼마나 했으면 손이 타버렸지
롤로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갈망은 기도를 낳았다.
기도는 절망을 낳았다.
롤로는 다만 아무것도 낳지 않고 싶었다.
낳는다는 건 퍼져나가는 일이지.
퍼져나가고 싶지 않았다.
롤로는 그러나 낳고 또 낳았다.
퍼져나간 그림자에서 잎사귀가 또 돋아났다.
금간 벽에 잎사귀를 붙였다 떼는 일이
메이와 함께 바다로 갔다.
검은 손바닥도
정든 소파와 식탁도 가버렸다.
롤로는 남았다.
병도 남았다.
찬장에서 기억을 꺼내 먹었다.
가만가만
롤로의 영혼이 이상한 빛을 내며 상해갔지만
바다는 영원을 가장하며 푸르렀다.
—《문학동네》201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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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하 / 1972년 서울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졸업. 2008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눈사람의 사회』『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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