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칠월 목록 / 서춘희

문근영 2017. 10. 31. 12:42

칠월 목록

 

   서춘희

 

 

 

잠든 이의 숨소리를 따라가 본다 무릎을 꿇고 검은 상자 속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처럼

 

달콤함이 당도하는 곳은 어디인지 묻고 싶었다 사탕과 낮잠과 입술과 잎이 큰 꽃 만지면 불안한 것들

 

오늘은 평화로운가 귀퉁이가 닳은 비누를 문지르면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기도 했다

 

이른 아침 몇 개의 조약돌을 찾는다 봉지째 뜨거워진 바닷가에서 온 물음들 무거운 유리를 사이에 두고 새가 발목을 스치며 간다

 

자꾸 말을 잃는다 왜 이렇게 멀리 가버리는지 분명 여기 있던 숨결이 코 끝에 닿지 않는다

 

남는 것과 남겨진 것

얼음은 녹기로 한다

눈앞에서 선을 고친다

 

아름다움 따위가 잘 자라는 곳에 있다 머리 위 그늘을 끌어당기며 하품을 할 것이다 앉을 자리를 골라주는 손을 보겠지 땀이 나기도 할 거야 검게 탔지만 타지 않았어 긴 기둥을 접으면 보라색 구름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저기, 물잔을 쥐고 가는 거인을 봐

 

낙차가 심한 기억에 우리는 웃었다 누군가 걸어둔 옷을 입으면 바스락거리는 죽음이 만져지기도 했다 칠월은 반음을 망설이는 감정으로 남는다

 

단지 조금 으깨진 빛깔을 쥐고

머무르지 않을 향을 맡았다

 

시장을 지나왔을 뿐인데 여기까지 와버렸어

 

들리지 않는 대화에 귀를 세우면

하나와 둘이 동시에 남겨졌다

 

 

 

                         —《시로 여는 세상》201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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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희 / 1980년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16년 봄 《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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