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목각인형 / 최현우

문근영 2017. 10. 31. 12:41

목각인형

 

   최현우

 

 

 

죽은 다음에도 살에 살을 끼워 물고 놓지 않는다면

빛과 잠을 섞는 저녁의 흔들의자

팔꿈치를 받쳐놓아도 차갑지 않은 티테이블

숨어 놀다 잠든 아이의 이불장롱처럼

조금 더 너랑 살겠지만

 

삐걱,

한밤의 고요 속에서만 불현듯

저축한 시간이 뒤틀리며

어둠과 함께 부서지면

하루의 책상과 식탁과 침대

다만 내일의 가구와 그 다음의 가구가 되어

나무와 나무를 닮은 기분이 되어

조금 더 너랑 살겠지만

 

어디로도 가지 않았는데 돌아가고 싶은

돌아갈 수 없는 사람처럼

물기 없이 말라붙은 얼굴에는

영혼 대신 페인트를 바른

하나의 표정

하나의 표면

 

이 넓은 밤은 누구의 빈집일까

발견되고 싶어서

뛰어내린 바닥에는 어째서 아직 닿지 않는 걸까

 

그러니까 내가 나를 물고 놓지 않는다면

조금은 더

너랑 살 수 있겠지만

 

 

 

                        —《현대시》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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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우 / 1989년 서울 출생. 2014년〈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되어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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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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