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각인형
최현우
죽은 다음에도 살에 살을 끼워 물고 놓지 않는다면
빛과 잠을 섞는 저녁의 흔들의자
팔꿈치를 받쳐놓아도 차갑지 않은 티테이블
숨어 놀다 잠든 아이의 이불장롱처럼
조금 더 너랑 살겠지만
삐걱,
한밤의 고요 속에서만 불현듯
저축한 시간이 뒤틀리며
어둠과 함께 부서지면
하루의 책상과 식탁과 침대
다만 내일의 가구와 그 다음의 가구가 되어
나무와 나무를 닮은 기분이 되어
조금 더 너랑 살겠지만
어디로도 가지 않았는데 돌아가고 싶은
돌아갈 수 없는 사람처럼
물기 없이 말라붙은 얼굴에는
영혼 대신 페인트를 바른
하나의 표정
하나의 표면
이 넓은 밤은 누구의 빈집일까
발견되고 싶어서
뛰어내린 바닥에는 어째서 아직 닿지 않는 걸까
그러니까 내가 나를 물고 놓지 않는다면
조금은 더
너랑 살 수 있겠지만
—《현대시》2017년 1월호
--------------
최현우 / 1989년 서울 출생. 2014년〈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되어 등단.
관련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메모 :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파산된 노래 / 김 안 (0) | 2017.10.31 |
---|---|
[스크랩] 칠월 목록 / 서춘희 (0) | 2017.10.31 |
[스크랩] 마루 밑에서 보낸 한 철 / 김남호 (0) | 2017.10.31 |
[스크랩] 피뢰 / 신두호 (0) | 2017.10.31 |
[스크랩] 형혹수심 / 박은정 (0) | 2017.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