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냄새는 유령처럼 떠돈다 / 류인서

문근영 2017. 10. 31. 12:28

냄새는 유령처럼 떠돈다 

    

   류인서

 

 

 

쓰레기더미에서 지독한 추억의 냄새가 난다

냄새를 쫓아 킁 킁 개가 짖는다

 

공갈뼈다귀라도 물고 놀지 그러니,

개가 지나간 쓰레기더미에서

비둘기 두 마리가 꽃다발을 쪼고 있다 헤집고 있다

버린 기억에 풀씨 같은 게 있었나,

쓰레기를 물어다 구애한다는 오렌지빛의 밝은 새가 떠올랐지만

나는 장미라는 기분의 흔한 안부에서 붉은빛을 지워버린다

저것은 한 때의 소화되지 않는 고통, 누군가 건너뛴 그을음 묻은 날짜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부푼 공기에서 생기를 얻는 냄새의 이목구비들

안경알에 묻은 꽃잎을 햇빛찌꺼기로 읽은 하루였으나

 

 

                        —《시와 세계》2017년 봄호

--------------

류인서 / 1960년 대구 출생. 2000년 《시와 사람》, 2001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여우』『신호대기』.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