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 보관함
김유미
솜털 같은 잠이 잠겨있다
틈으로 불빛을 들여 안을 부풀리고 있다
여린 잠이 싱싱하게 보관되고 있다
자루인 것처럼 고요한 나무인 것처럼 사람들은
띄엄띄엄한 밤을 지나가고
아기는 어느 첫 세계를 향해 숙면 중이다
문이 열리면 아기는
나무도 없이 낙과의 계절이 번져온다는
흐르고 흐르다 흩어지고 만다는
사과의 정의를 눈치 채고
어느 날은 눈물 없는 꽃으로
어느 날은 물을 쥐는 주먹으로
힘껏 팔을 뻗어가는
새벽을 흘리며 붉어지는 사과가
느리게 느리게 갈변하는 주먹이
밤의 구멍 난 봉지에서 두 손을 내미는 때
가도 가도 여물지 않을 것 같은 주먹이 여물어가기 위해
가방의 손잡이를 빨고 있다
열리는 동쪽처럼 기분이 풀리는 물감처럼
눈을 맞추고 있다
알면서 울고 있는 얼굴도 모르는 척 웃고 있는 내부도 그럴 수 있겠지만
누군가 밤이 써 놓은 문장을 훔쳐
엄마가 맨 처음 꾸었던 악몽이라고 낙서를 해 놓고 사라졌다
—《시와 반시》2017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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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미 / 1966년 전남 신안 출생. 2014년《시와 반시》로 등단.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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