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도 길이다
감태준
까마득히 높은 절벽과 처음 맞닥뜨렸을 때
파도는 얼마나 끔찍했을까.
백사장 놓치고
유채밭 옆 갯고랑도 놓친 파도가
애 터지게 절벽을 밀어붙인다.
절벽을 넘지 않으면
물살 드센 바다밖에 돌아갈 데 없는 생이라,
절망하고 절망하면서도 남은 절망으로
몸을 세우는 억척.
길지 않은 천명에
머뭇댈 틈 있는가,
다치고 부서지고 짐승처럼 우는
파란도 길이다.
절벽 너머 세상은
못 가는 곳이 아니라 안 가본 곳이라고,
백사장에 행장 풀 순서 아니라면
살아내는 것이 먼저라고,
한 번 더, 한 번 더 절벽을 밀어붙인다.
옆에서 폐지 리어카 끄는 꼬부랑 노파도
기를 쓰고 절벽을 밀어붙인다.
—《시와 표현》2017년 5월호(불교문예 2015년 발표작을 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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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태준 / 1972년《월간문학》등단. 시집『역에서 역으로』『몸 바뀐 사람들』『마음이 불어가는 쪽』『마음의 집 한 채』『사람의 집』외. 논저『이용악시연구』편저『한국현대시감상』『기도』외. 현재 《시인수첩》편집인.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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