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파란도 길이다 / 감태준

문근영 2017. 10. 31. 12:26

파란도 길이다

 

  감

 

 

 

까마득히 높은 절벽과 처음 맞닥뜨렸을 때

파도는 얼마나 끔찍했을까.

백사장 놓치고

유채밭 옆 갯고랑도 놓친 파도가

애 터지게 절벽을 밀어붙인다.

 

절벽을 넘지 않으면

물살 드센 바다밖에 돌아갈 데 없는 생이라,

절망하고 절망하면서도 남은 절망으로

몸을 세우는 억척.

 

길지 않은 천명에

머뭇댈 틈 있는가,

다치고 부서지고 짐승처럼 우는

파란도 길이다.

 

절벽 너머 세상은

못 가는 곳이 아니라 안 가본 곳이라고,

백사장에 행장 풀 순서 아니라면

살아내는 것이 먼저라고,

한 번 더, 한 번 더 절벽을 밀어붙인다.

 

옆에서 폐지 리어카 끄는 꼬부랑 노파도

기를 쓰고 절벽을 밀어붙인다.

 

 

                         —《시와 표현》2017년 5월호(불교문예 2015년 발표작을 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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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태준 / 1972월간문학등단. 시집역에서 역으로』『몸 바뀐 사람들』『마음이 불어가는 쪽』『마음의 집 한 채』『사람의 집. 논저이용악시연구편저한국현대시감상』『기도. 현재 《시인수첩》편집인.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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