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카레
임현정
마을 하나가 폭발하고
노란 짚더미 위
너의 심장이 남겨지는 것
아니 어쩜 그건 억울한 양의 염통
토끼가 씹던 당근 조각이거나
수화기를 통해 지령을 전달받던 잠수함
누수 된 눈물이 전화선을 녹일 때
감전된 소년병이 유황빛 계곡에 처박힌다
간이침대엔 양배추 이파리 같은 애인의 편지
노란 고름이 쏟아지던 옥상
겨자소스를 바른 샌드위치를 베어 물며
지상을 내려다보는 소년
깁스는 언제 풀어?
곧
늪을 건너왔지
일회용 숟가락 같은 악어들이 배를 뒤집은 채 죽어있는 곳
우리가 밟은 게 젖은 나무토막이었나, 질기고 질긴 누군가의 팔다리였나,
성당 종소리가 멈췄다
밀봉하듯 밤이 오고 있어
물가 오두막으로 뛰어들까
배꼽 같은 거기서 서로의 목이라도 조를까
주홍빛 어깨를 드러낸 그 애가 웃는다
금세 난파될 소파 위에서?
어느 나라엔 화학조미료로 만든 소파가 있대
그럼, 카레 맛 소파는? 동시에 시작되는 키스 맛 소파는?
우리는 영원히 멈춰 있는 건지도 몰라, 검은 터널을 통과하는 은빛 총알 속에서
벙커가 공개되고
마지막 3분이 쏟아졌다
그를 노랗게 휘젓던 향정신성 알약들과 그녀가 뜨다 만 치자색 스웨터
쓸데없이 고귀한 3분의 절망이
이윽고 접시를 물들였다
- 웬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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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정 / 1977년 서울 출생. 고려대 한국어문학과 대학원 석사 과정 졸업. 2001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시집 『꼭 같이 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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