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재 수난사>(55) /
봉은사(奉恩寺) 보물 향로 도난 사건
1961년에 서울 창덕궁에 보존되어 오던 과거의 왕실 유물과 미술품의 도난 사실이 알려져 세인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내각 사무처가 발표한 그 도난 유물과 미술품의 수는 무려 216점이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정확한 파악이 아니었음이 그 후 조사에서 드러났다. 당시 창덕궁 유물과 미술품의 관리자는 구황실 재산 사무총국이었는데 전문적인 직원이 없었고, 따라서 정확한 유물 조사 대장조차 작성돼 있지 못한 실정이었다. 과거의 서류나 기록도 8·15와 한국전쟁 때 거의 유실되고 없었다.
사건이 발표된 후 확실한 내막 조사를 위촉받았던 관계 전문가들은 조사 과정에서 기록에 없는 유물들이 나타나는가 하면 기록에 있는 물건이 기록 장소에 없는 어처구니없는 관리 상태를 확인했다. 물론 실제로 도난당한 것으로 믿어지는 유물도 많았다.
창덕궁의 귀중한 왕실 유물과 미술품 200여 점이 도난당했다고 발표되기 전인 5월, 창덕궁에 침입하여 ‘칠보 화병’과 ‘칠보 향로’ 등 4점의 유물을 훔쳐내어 골동상에 팔려던 범인이 경찰에 체포된 일이 있었다. 이 때는 구황실 재산 사무총국에서 도난 사실을 즉시 알고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에 당장 범인도 잡고 물건도 무사히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3월에(사실은 그 이전에) 도난당했다지만 실제로 언제 어떻게 도난당한 것인지 확실치 않은 유물과 범인 수사에서 경찰은 아무런 구체적인 단서도 잡을 수가 없었다.
국가 지정 문화재인 국보와 보물을 훔쳐 국내 혹은 국외로 팔아먹으려던 그야말로 간덩이가 부은 절도범 사건이 1963년 이후 다섯 번이나 있었다. 첫 사건은 서울 한강 남쪽의 봉은사에서 일어났다.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 보물 321호
1963년 5월 9일, 문화재 관리국 직원 한 사람이 봉은사에 보관돼 있던 보물 321호의 ‘지정 4년명’ 고려 ‘청동루 은향로(至正四年銘 高麗靑銅 縷銀香爐)’의 보호 상태를 확인하려고 나갔다가 향로가 감쪽같이 도난당한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도난 현장을 검색한 후 봉은사 측에서 의심스럽게 여기고 있는 유력한 용의자 유 아무개를 전국에 즉각 수배했다. 용의자의 행방을 추적하여 수 명의 형사가 각지로 급파되고, 다른 수사진은 서울과 기타 도시의 골동상을 내사했다.
보물 향로의 절도 용의자 유 모(당시 32세)는 자칭 수도승으로 제주도 한라산에 있는 관음사(觀音寺)에서 수도 생활을 하다 올라왔다면서 봉은사를 찾아왔다. 사건 발생 한 달 전의 일이었다. 그는 수도승임을 자처하여 어렵지 않게 숙식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그는 봉은사에 머무르는 동안 보물 관리 책임자인 김대성 씨(당시 26세)와 같은 방에서 기거했다. 그 때 보물 향로를 보고 값으로 치면 100만 원도 넘을 거라는 농담도 주고받았다. 그러던 그가 온다 간다 말없이 사라진 후 보물 향로의 도난 사실이 발견되었다. 절 측에서 먼저 의심을 했고, 경찰도 유력한 용의자로 단정할 만한 인물이었다.
범인 수사에 착수한 지 일주일 만인 18일 오전, 서울 시내 조선호텔 앞의 한 골동상에 들렀던 성동서의 길운제 형사가 결정적인 단서를 포착했다. 이틀 전에 향로를 팔겠다고 온 사나이가 있었는데 연락처를 말하고 갔다면서 골동상 주인은 용의자의 거처를 알려주었다. 길 형사는 그 길로 불광동의 D여관을 급습했다. 범인은 예측했던 대로 봉은사에서 사라졌던 자칭 수도승 유 아무개였다. 미처 팔아먹지 못한 보물 향로가 여관방 한구석에 숨겨져 있었다.
형사가 들어 닥치자 범인은 모든 범행 사실을 즉석에서 자백했다. 범행 날짜는 5월 3일이었다. 보물 관리자 김 씨가 부산에 다니러 간다고 떠나자 유는 우발적인 범행을 감행했다. 다락방에서 몰래 열쇠를 꺼내 갖고 보물고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간단히 보물 향로를 꺼내 들고 봉은사를 탈출했다. 밤 9시께였다.
크기가 한 아름이나 되는 향로를 보자기에 싸 갖고 무사히 한강을 건넌 유는 택시를 잡아타고 범행 장소와 정반대쪽인 서대문구 불광동으로 달린 후 D여관에 투숙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그는 거액으로 팔아먹을 곳을 찾아 나섰다. 그가 자백한 바로는 모 재벌 수집가에게 팔려고 중간 소개인과 접촉하려다가 실패했고, 조선호텔 앞의 골동상을 찾아갔다가 마침내 경찰 수사망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범인은 대학 교육까지 받은 지식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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