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한국 문화재 수난사>(54) / 도난당한 황금 모조 금관

문근영 2017. 4. 17. 14:39

<한국 문화재 수난사>(54) /

도난당한 황금 모조 금관



경주 박물관의 금제 유물을 노린 도둑이 1956년에도 있었다. 1927년의 첫 번째 도난 때엔 범인이 지붕과 벽면을 뚫고 유물 진열실로 침입하려다 실패한 후 나중엔 정면의 이중철문의 자물쇠를 뜯고 들어갔지만 이번엔 저녁 때 박물관 진열실 문이 닫히기 전에 관람객을 가장하여 잠입해 있다가 범행을 감행했다. 이때의 목표물은 바로 금관이었다.


[금관총 금관] 국보 87호



금관총 출토 유물의 두 번째 수난이었다. 앞의 범인은 금관에만은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자질구레한 금제품이 아니라 신라 고분에서 나온 최대의 국보 유물인 금관, 바로 그것을 훔쳐 팔아먹으려고 했으니 참으로 대담한 자였다. 치밀하게 유물실에 잠복해 있던 범인은 밤중에 이르러 성공적으로 일을 치렀다. 그는 국보 금관만 싸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국보 금관의 도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것은 진짜가 아니라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똑같은 모조품을 만들어 진열장에 넣었던 가짜 금관이었다. 전문가는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눈을 가진 사람이면 그것이 모조품이란 것을 한 눈으로 식별할 수 있었지만 범인은 찬란한 황금빛에만 현혹됐을 뿐 유물 감식엔 무식했다.


사건 발생 후 경주 박물관에선 도난당한 금관이 모조품이라는 사실을 해명하고, 신문들도 그렇게 보도했다. 그러나 그 때까지도 범인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훔친 금관을 막보따리처럼 싸 갖고 부산 방면으로 탈출하려고 경주 역에 나가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서 범인은 자신의 범행 사건을 보도한 신문 기사를 읽어보고 그제서야 그것이 가짜 금관이란 사실을 알았다. 범인으로선 청천벽력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는 물건을 박물관에 도로 보내지도 않았고 경찰에 자수하지도 않았다. 그는 경주 역에서 곧장 시외의 서천께로 도피해 가서 모래밭을 깊숙이 파고 그 속에 일확천금의 어리석었던 꿈과 진짜로 알았던 모조 금관을 함께 묻어 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범인은 결국 금관 도난 사건의 용의자로 경찰에 검거되었다. 그는 모든 경위를 자백했다. 그러나 그의 자백에 따라 서천 모래사장으로 갔던 경찰은 그곳에 묻었다는 모조 금관을 찾지 못했다.


[금령총 금관] 보물 338호


[서봉총 금관] 보물 339호



신라시대의 황금 보관을 노린 도둑은 8·15 직후 서울의 국립 박물관에도 나타났다. 그 때 박물관에선 과거 일제 때에 경주 고분에서 발견된 세 금관(금관총·금령총·서봉총 출토)의 모조품을 하나씩 만들어 일반에게 관람시키고 있었다. 진짜 유물들은 불안한 사회 정세에 비추어 금고 속에 넣어 보관하고 있었다. 출토지인 경주의 박물관에는 가장 유명한 금관총 금관의 모조품을 내려 보내고, 서울의 경복궁 박물관에 진열된 것은 금령총과 서봉총 금관을 모조한 것이었다. 그런데 박물관에서 짐짓 염려하고 대비했던 그대로 금관을 노린 도둑이 침입했던 것이다.


어느 날 밤, 경복궁의 국립 박물관 금관 진열실에 잠입한 도둑이 두 금관을 모조리 들고 사라졌다. 이튿날 아침에야 박물관 직원이 그 사실을 알았다. 이 때의 범인도 10년 후에 경주 박물관의 모조 금관을 훔쳤던 범인처럼 그것이 모조품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무식한 도둑이었다. 박물관 측에선 즉시 신문을 통해 도난당한 금관이 순금이 아닌 모조품이라는 사실을 해명하고 물건을 돌려보내 달라고 호소했지만 허사였다. 역시 신문 보도로 가짜란 사실을 안 범인이 실망하여 밟아 뭉개버린 모양이었다.


서울과 경주 박물관에서 두 번에 걸쳐 도난당했던 금관들이 모두 진짜 유물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만일 그 범행이 성공적이었다면 아마 일본이나 다른 외국으로 영원히 팔려 나갔을지도 모른다. 국내에서는 세상이 다 아는 지정 국보의 금관을 그것도 박물관에서 훔쳐온 물건을 몰래 사 가질 어리석은 수집가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극적으로 위기를 모면한 한국의 세계적 고대 미술품인 3개의 금관 중 금관총 금관은 현재 국보 87, 금령총 금관보물 338, 그리고 서봉총 금관보물 339로 각각 지정 보호되고 있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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