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군의 정통성은 신흥무관학교에서 찾아야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돌 기념 학술회의 열려
▲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돌 기념 학술회의 모습
“장백산 밑 비단 같은 만리낙원은
반만 년래 피로 지킨 옛집이어늘
남의자식 놀이터로 내어 맡기고
종 설움 받는 이 뉘뇨
칼 춤 추고 말을 달려 몸을 단련코
새로운 지식 높은 인격 정신을 길러
썩어지는 우리 민족이 끌어내어
새나라 세울 이 뉘뇨
(후렴)
우리 우리 배달나라에 우리 우리 조상들이라
그네 가슴 끓는 피가 우리가슴 좔좔좔 걸치며 돈다”
위는 항일무장투쟁의 금자탑 ‘신흥무관학교’ 교가이다. 신흥무관학교는 나라를 잃은 경술국치 다음해인 1911년 만주 길림성 추가가 삼원포에서 신흥강습소란 이름으로 개교한 뒤, 교세 확장을 거듭하여 1920년까지 3천 5백여 명에 이르는 독립군 간부를 배출한 일제강점기 최대의 항일무장투쟁 기지이다.
하지만, 항일무장투쟁의 금자탑 신흥무관학교는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하고 잊혀 가는 신세가 되었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그동안 신흥무관학교100주년 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가 꾸려졌고, 동 사업회 주최, 국가보훈처 후원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재조명하는 ‘신흥무관학교와 항일무장독립운동’ 학술회의가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어제(2011년 5월 13일) 오후 2시에 열렸다.
이날 학술회의는 독립운동에 관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대거 참여하여 관심을 끌었다. 학술회의 전 먼저 신흥무관학교100주년 기념사업회 전기호 공동대표(경희대학교 명예교수)가 개회사를 했고, 이어서 이회영 기념사업회 이종찬 이사장(전 국정원장)과 이종걸 국회의원의 축사가 있었다. 특히 이종찬 이사장은 “신흥무관학교가 국군의 정통성을 이었음을 널리 알려 단절의 역사를 그치게 하고 빛나는 역사를 후세에 가르치도록 하자.”라고 강조했다.
주제발표 전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의 저자로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성균관대 사학과 서중석 교수는 기조강연에서 “신흥무관학교는 대한제국 무관학교와 의병의 맥을 이어받았다는 점에서도 민족사에서 큰 의미가 있다. 전 세계 독립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전쟁인 청산리대첩도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주도했다.”라며 “사관학교는 대한제국무관학교, 신흥무관학교의 맥을 이어받는 올바른 교육을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 개회사를 하는 전기호 신흥무관학교100주년 기념사업회 공동대표(왼쪽),
축사를 하는 이회영 기념사업회 이사장(가운데), 이종걸 국회의원
이어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와 신흥무관학교”라는 제목의 제1주제발표에서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나라를 빼앗긴 뒤 곧바로 만주로 망명, 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으로 활약하는 등 항일무장독립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에 국군의 정통성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왔음이 분명하다.”라고 강조했다.
“1910년대 독립군기지 건설운동과 신흥무관학교”란 제목으로 제2주제발표를 한 윤경로 전 한성대학교 총장은 신흥무관학교 설립의 인적, 물적 토대를 분석했다. 그는 “신흥무관학교를 유지 발전시킨 주요 인물들을 이회영을 중심으로 한 상동파, 이상룡 김대락 김동삼 등 안동지역 혁신유림계, 이건승 정원하 홍승헌 등 강화학파 계열로 나눠볼 수 있다. 특히 신흥무관학교 태동에서부터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이름도 빛도 없이 온갖 고통을 견디면서 뒷바라지를 한 여성들의 헌신도 빼놓을 수 없다.”라고 하여 눈길을 끌었다.
윤 전 총장은 주제발표를 마치면서 “신흥무관학교 태동의 주역들은 근대 이전의 ‘불사이군(不事二君)’ 정신을 마음속에서 태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외연화한 인물들이라며, 이 시대에 지도층들이 따라야 할 할 본보기로 보자고 말했다.
제3주제발표는 한시준 단국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의 “신흥무관학교 이후의 독립군 간부양성’으로 이어졌다. 그는 1920년까지 존속했던 신흥무관학교의 폐교 이후부터 1940년대까지 면면히 이어져 온 항일독립군 군사간부 양성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그러면서 “한민족의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본다면 육군사관학교의 연원은 신흥무관학교에서 찾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마지막 주제발표를 한 ≪창군≫의 저자인 한용원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는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서 해방 후 대한민국 국군의 탄생까지의 역사적 맥락”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경비대를 국군의 기원으로 보는 경비대 모체론은 ‘독립군-광복군-국군'으로 이어지는 정통성을 부정하여 군의 역사를 왜곡했다.”라고 비판했다. 또 한 교수는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로부터 광복한 우리는 역사적 정통성을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중심이 된 독립군의 활동에서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신흥무관학교 태동의 주역 중 우당 이회영(李會榮, 1867~1932) 5형제는 망명의 길을 결단하고 국외 독립군기지 건설운동에 나설 것을 결심한 다음 50여 명의 한집안 식구들과 함께 1910년 12월 30일 압록강을 넘어 망명길에 올랐다. 이회영 일가가 당시 처분한 재산은 무려 40만 원, 요새 돈으로 환산해보면 600억 원에 달하는 큰돈이었다는데 그런 큰돈을 모두 나라에 바칠 수 있는 이가 과연 또 있을까?
이 자리에 참석하여 경청한 민족문제연구소 서초 지부장 손영주 씨는 “우리 국군의 정통성을 이어준 신흥무관학교를 새롭게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신흥무관학교를 잊지 않는 역사 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란다.”라고 감회를 새겼다. “신흥무관학교”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산 표본으로, 나라의 광복을 위하여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던 선열들의 결집체임을 확인시켜준 이번 학술회의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큰 외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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