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의 봄, 400년 전 비극을 되짚다
남원문화대학, “2011년도 개강 및 학술세미나” 열어
▲ 남원성의 비극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는 일본 교토 코무덤
남원문화대학은 남원문화정립과 지역 소외의 문제를 극복하고 21세기 정보화시대에 이론적인 범주를 벗어나 실질적인 대안을 함께 제시하는 마당으로 2000년 남원향토문화연구회와 원광대 사회교육원이 주축이 되어 만든 프로그램이다. 이 남원문화대학이 주최하는 세미나가 있었다.
진달래가 온 산에 흐드러진 지난 4월 16일 늦은 2시 남원 춘향문화예술회관 소강당에서 가진 “2011년도 남원문화대학 개강 및 학술세미나”는 먼저 남원문화대학 안상현 학장의 인사말이 있었고, 곧바로 김재성 서울신문 논설위원의 진행으로 제1부는 이해학 목사(강제병합 100년 한일시민모임 상임대표)의 “한일 과거사 청산을 위한 제안”, 제2부는 이윤옥 교수(한국외대,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의 “임진·정유재란의 비극 일본 교토 <코무덤>에 대하여”란 제목의 주제발표가 있었다.
이해학 목사는 조국의 민주화? 통일 운동을 하다 세 번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지역빈민운동과 갈 곳 없는 이주자들을 내 가족으로 보살피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 “2011년도 남원문화대학 개강 및 학술세미나” 모습
▲ 학술세미나 인사를 하는 안상현 대학장, 진행자 김재성 논설위원,
발표자 이해학 목사, 이윤옥 교수 (왼쪽부터)
이 목사는 “이웃이 좋아야 내가 편안하다. 이번 일본 동북부 지방의 대지진 때 모금 운동을 벌여 그들을 돕고자 한 것은 그런 차원에서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한 일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그 순간도 독도를 자기 땅으로 고착화하려는 음모를 버리지 않았다.’라고 말머리를 꺼냈다.
그리고 “작년은 국치 100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100년간 일본의 변화란 없다. 변화는커녕 오히려 더 과거 제국주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일제강점기 때 그들이 자행한 침략과 식민지 범죄의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은 상태이다. 아니 오히려 그 상처는 더욱 깊어져 속으로 곪고 마침내 고름으로 흘러나오고 있을 뿐이다.”라면서 일본은 독일처럼 과거를 진심으로 사죄함으로써 한일과거사 청산을 하고 그 바탕 위에 동아시아 평화의 실질적인 출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주제발표에서 이윤옥 교수는 상세한 고증 자료를 통해 교토의 풍신수길 사당(풍국신사) 앞 코무덤을 귀무덤이 아닌 코무덤으로 불러야 하는 까닭을 역설했다. 특히 코무덤 앞에 풍신수길이 세운 비석의 비문에 뚜렷이 코무덤이라고 쓰여 있다는 점과 재야사학자 고 조중화 씨가 발굴한 코영수증, 코감사장 그리고 코무덤 앞에 교토시가 세운 안내판 등의 예를 들어 현재 일본이 귀무덤(미미즈카)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1603년 일본학자 하야시라잔이 잔인함을 들어 코무덤을 귀무덤으로 하자고 해서 귀무덤(미미즈카)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명백한 역사왜곡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들을 꾸짖어야 할 우리가 주체적인 역사의식 없이 그대로 귀무덤이라고 따라 부르는 일이다."라고 꼬집었다. 또 이교수는 독도를 일본인이 죽도(다케시마, 竹島)라고 부른다 해서 우리가 죽도라고 불러서는 안 되는 것처럼 교토의 코무덤이 귀무덤으로 왜곡돼 불리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 만인의총에서 그날의 아픔을 되새기는 참가자들
또 이 교수는 정유재란 때 많은 희생자를 낸 남원은 지금도 구천에서 떠도는 원혼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며 하루빨리 코무덤을 남원으로 모셔 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작시 “코무덤”을 낭독한 뒤 주제발표를 마무리했다.
“돌 치워라 돌 치워라
봉분 위 돌 치워라
먼 고향 남원 땅 엄니 곁에 나 가리라
왜놈 칼 맞고 코 잘려 그 길로 왜놈 땅 끌려왔네
돌이 애비야 돌이 애비야!
황천길 아들 찾아 헤매셨을 엄니
여보 여보 돌이 아빠 울부짖으며
지아비 시체 찾아 헤맸을 아내
아부지 아부지 어디계셔요
눈물 흘리며 엎어지고 기어가며 애비 찾았을 피붙이
돌 치워라 돌 치워라
봉분 위 돌 치워라
좁은 무덤 박차고 훨훨 날아 내 고향 남원 땅으로
나 돌아가리라.“ -이윤옥 ‘코무덤’-
주제발표가 끝나고 남원문화대학 수강생들은 강사진과 함께 정유재란 때 장렬히 전사한 분들의 무덤인 “만인의총”을 찾아 뫼절(참배)을 올렸다. 이어서 일제가 남원성을 허물고 그 자리에 있던 옛 만인의총 터에 철로길을 깔아버린 만행의 현장과 일부 복원된 남원읍성을 둘러보았다.
▲ 남원문화를 지키고 가꿔내는 하진상 실장이 남원읍성에 대해 설명한다
만인의총을 둘러보면서 참석자들은 만인의총 시신은 모두 남원성 전투에서 죽은 분들이어서 모두 코가 없이 묻힌 분들임으로 하루빨리 코무덤을 봉안해와 함께 모셔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콧대가 세다.’같이 코는 얼굴의 자존심인데 원혼들의 코를 도로 찾아와 제 얼굴 모습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후손된 도리라는 주장이었다.
또 구 남원역은 남원성 북문 터로 일제는 북문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철로를 깔아 역 플랫폼을 만듦으로써 순국현장을 무심히 짓밟고 다니게 했을 뿐 아니라 무덤 위를 시도 때도 없이 철마가 굉음을 내고 다니게 하는 등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고 인터넷포털 남원포유 하진상 편집실장은 증언했다.
구석구석 역사의 한이 서린 현장을 안내하는 남원 시민들의 목소리는 생생히 살아 있었다. 이들의 얼굴에선 왜곡된 역사에 안주하지 않고 깨어 있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또한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역사의 전환점에 언제나 두각을 드러냈던 남원 시민들은 4344(2011)년 찾아온 남원의 봄바람 속에서도 어김없이 400년 전 남원성의 비극을 되짚으며 역사왜곡을 바로잡고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될 것을 다짐하고 있었다.
▲ 일부 복원된 남원읍성, 400여 년 전 이곳에서 남원 사람들은 처절하게
항쟁하다 죽어갔고, 왜군에 의해 코가 잘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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