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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 최고 문학인들에게 풍자폭탄 던지다

문근영 2016. 8. 18. 07:39

 

한국 최고 문학인들에게 풍자폭탄 던지다

[서평] ≪사쿠라 불나방≫, 이윤옥, 도서출판 얼레빗

 

 

 

거기 그 거울 속

오래전부터 누님 함초롬히 앉아 계실 때

동백기름 사들고 찾아 간적 없는

매정한 오라비

 

오장마쓰이 송가로

호주머니 두둑히 엔화 받아 들고

물오른 걸음 할 때

 

인자한 내 누님

일본군 총칼 앞에 치마 들리고

큐슈 치쿠호 탄광 벽에

‘배가 고프다 / 내 고향 경북 상주 / 엄니가 보고

싶다’

쓰던 막내 동생 죽어 갔었지” <후략>

 

지난 3·1절을 맞이하여 독특한 시집 한권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위 시도 그 시집 속에 나오는 시로 어디선가 자주 접하던 시 같지 않은가? 바로 한국 최고 시인으로 꼽히는 미당 서

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풍자한 시 “오장마쓰이를 위한 사모곡 <서정주>” 일부이다. 이 시는   최근 도서출판 얼레빗에서 펴낸 이윤옥 시집 ≪사쿠라 불나방≫에서 볼 수 있다.

 

이 시집은 서정주뿐만이 아니라 김기진, 김동인, 김동환, 김문집, 김상용, 김안서, 김용제, 노천명, 모윤숙, 유진오, 유치진, 이광수, 정비석, 주요한, 채만식, 최남선, 최재서, 최정희 등 일제강점기 당시 쟁쟁했던 20명의 문학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사쿠라 불나방≫은 친일문학인들의 시를 패러디한 풍자시를 중심으로 서정주 등 시인들이 왜 친일문학인으로 꼽혔는지를 알 수 있는 시인 이력, 친일 시 한편, 친일 작품 목록과 더보기를 통해서 친일 내력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독특한 시집이다.

 

우리 겨레는 일제강점기 친일청산을 위해 해방 뒤 반민특위를 세워 처단하려 했지만 이승만 일파의 흉계로 좌절하고 말았으며,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여러 문제에 부딪혀왔다. 그 뒤 ≪친일문학론≫을 집필한 임종국 선생은 홀로 방대한 친일파들의 행적을 쫓는 일에 평생을 바치다가 세상을 뜨고 이를 이어받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드디어 염원하던 ≪친일인명사전≫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 1940년 2월 20일 매일신보 "창씨와 나" 이광

 

이 사전에는 친일 한 사람들의 행적이 방대한 자료와 함께 수록되어 있어서 말로만 듣던 친일파들의 불나방 같던 행동을 잘 파악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일반인이 곁에 두고 자주 보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감안하여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인 이윤옥 시인이 이 사전 속의 인물 중 친일문학인만을 골라 풍자시집을 내놓은 것이다. 시인은 말한다. “누구나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시집을 통해 친일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시집을 읽다보면 왜 이들을 친일문학인으로 분류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풍자시와 함께 시집을 흥미롭게 한 것은 “더보기”다. 여기엔 김동인이 해방 2시간 전 조선총독부에 찾아가서 “황군작가단”을 꾸리자고 아부하던 일, 모윤숙이 일제 때 미국을 쳐부수자고 선동하는데 앞장서다 해방이 되자 180도 돌변해서 미국에 친선대사로 간 일, 서정주의 전두환에게 써준 찬양시 전문이 눈길을 끈다.

 

또 혈의누 작가 이인직이 일본 유학시절 스승인 미도리 교수에게 찾아가서 조선 병합을 부추긴 일 등이 낱낱이 소개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할 최남선과 이광수가 일본 명치대학에서 유학생들에게 학병 입대를 강권하는 연설을 할 때 어찌나 힘을 주었던지 최남선의 허리띠가 끊어졌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소개되고 있다.

 

 

                                                  ▲ 징병제 실시 찬양 노천명 시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매일신보 1943.8.5

 

 

                                      ▲ 일제 총동원 정책에저극 협력한 모윤숙 시 "지원병에게" 삼천리 1941년 1월호

 

 

≪사쿠라 불나방≫을 쓴 이윤옥 시인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일본어를 30여 년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친일청산 문제에 매달리고, 일본말찌꺼기 말밑(어원)을 캐내 알리는 일에 온 정성을 쏟고 있다.

 

이윤옥 시인은 말한다. “친일파를 벌주고 욕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이제 그들의 공과에 분명히 선을 긋고, 잘한 것은 칭찬하고 잘못한 것은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보라! 우리가 김동인의 친일 사실을 국어시간에 배운 적이 있는가?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친일파 이야기냐고 빈정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언제 우리사회가 그들의 행적을 낱낱이 알려 주었는가? 노천명의 주옥같은 시 옆에 나란히 친일시를 소개한 시집 한권이 나온 적이 있는가? 친일이든 독립이든 소상한 내용을 국민들이 알아야 함에도 그간 한쪽의 사실만 기록 해놓은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모든 일은 알려주고 판단은 개개인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작년으로 치욕스런 국치 100년도 넘었고, 빛을 되찾은 지도 65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국민은 친일의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다고 이 시인은 아쉬워한다. 또 시중에 나와 있는 백과사전이고 교과서고 그들의 공적에 대한 화려한 찬사만 있다고 개탄한다.

 

“맑은 창공 밝은 달 아래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어도 유독 불나비는 촛불만 쫓고 맑은 물 푸른 숲에 먹을 것 가득하지만 수리는 유난히도 썩은 쥐를 즐긴다.”는 시집 머리말처럼 한 시대를 그렇게 허망하게 살다간 한국의 위대한(?) 문학인들의 행적을 풍자시로 소개하는 이 책은 기존의 시집과는 다른 신선한 재미와 더불어 우리에게 깊은 사색을 하게 해주는 보기 드문 시집이다.

 

 

 

친일청산에 공소시효는 없다

[대담] ≪사쿠라 불나방≫ 지은이 이윤옥 시인

 

 

- 어떻게 친일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시를 쓰려는 생각을 했나?

 

임종국 선생이 쓴 친일문학론을 읽으면서 우리가 국어 시간에 접하지 못한 친일문학인들의 실상을 알게 되었으며 내가 좋아하는 노천명도 친일 작가임을 알고부터 친일작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일을 하면서 시인으로서 자연스럽게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다루고 싶었다.

 

▲  지은이 이윤옥 ⓒ 김영조            -보통 일제 강점기에는 누구나 친일하지 않을 수 없

                                          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 지은이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누구나 친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장강일기’를 쓴 정정화 여사 같이 여자 몸으로 상해임시정부까지 혼자 찾아가 독립운동을 했던 분도 있다. 또 교육을 많이 받지 않은 사람들도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야한다는 신념으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누구나”라고 한다면 일신의 안위를 뒤로 한 채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독립군으로 나라를 지킨 이런 분들은 무엇인가? 또한 이광수처럼 가장 먼저 솔선수범으로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까지 건너가 유학생들을 모아 놓고 허리끈이 끊어지도록 학병에 나가라고 신념에 찬 강연을 한 것도 어쩔 수 없이 한 행위란 말인가!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자기변명일 뿐이다.

 

- 이 시집은 보통의 시집과는 다르게 자료 부분이 많다. 그렇게 한 까닭은?

 

내가 이 시집을 낸 목적은 친일한 사람들의 행적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시는 한 꼭지로 충분하며 대신 그들을 잘 알 수 있는 자료를 많이 넣는 방식을 택했다. 또 그런 방식이 좀 더 사람들에게 객관적으로 다가가는 방법일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까지 이런 이야기를 할 것이냐고 할지 모르나 아직 한국내의 친일 이야기는 보따리도 제대로 풀지 못한 상태이다. 그 자료는 많이 보여 줄수록 좋다고 본다.

 

- 친일 문학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까닭은?

 

배따라기, 감자등으로 알려진 김동인이다. 그는 광복 2시간 전까지 친일한 작가다. 그가 총독부 검열과장 아베다츠이치를 찾아가 시국에 공헌할 작가단을 꾸리겠다고 제안했을 때 아베의 눈은 멸시와 조롱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일본의 패망 소식도 모른 채 일본에 빌붙을 생각에 눈이 먼 조선의 지식인이 얼마나 가소로웠을 것인가! 이러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국어책에서 이러한 사실을 잘 알려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지은이는 얼마 전 ≪사쿠라 훈민정음≫이란 책을 낸 것으로 안다. 일반적으로 일본어를 공부한 사람은 보통 일본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데 지은이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진 듯하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사연이라도 있나?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역사 이야기다. 지금 일본과 잘 지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렇다고 해서 과거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에 잘못한 일 자체를 덮어 버리거나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일에 긍정적일 수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역사를 보면 답은 명쾌하다. 불도 없던 깜깜한 암흑 시절! 내 겨레의 등을 친 사람들을 알아보는 작업은 일본을 긍정 또는 부정으로 보는 것과는 무관하게 밝혀내야 할 일일뿐이다. 거기에 공소 시효는 없다고 본다.

 

- 앞으로 또 다른 책을 낼 계획은?

 

 

친일 문학인에 이어 음악인, 미술인, 언론인 등등 한손에 쏙 들어오는 시집으로 그들을 알리고자 열심히 준비 중이다. 그들의 공(功)은 광복 66년에 이르는 지금껏 충분히 드러나 있으니 그 자료들을 보면 되고 이제는 과(過)부분을 알려 균형 잡힌 평가를 독자가 내릴 수 있도록 하는데 시라는 형식으로 접근하고 싶다.

 

또 준비 중인 시집이 있다. 2·8독립선언 때 조선인 유학생들의 변론을 맡아 주었던 후세다츠지 변호사, 일본 유일의 가해 박물관을 만든 나가사키의 오카마사하루 목사, 조선옷을 입고 조선인 보다 더 조선을 사랑한 아사카와다쿠미 등 고마운 일본인들에 대한 시집도 조만간 펴낼 예정이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가리지 않고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좋은 일을 한 사람과 좋지 않은 일을 한 사람에 대한 ‘사람이야기’를 중심으로 시집 발간을 꾸준히 준비 중에 있다.

 

 

 

 

출처 :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글쓴이 : 김영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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