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다리 위 북극 / 이성미

문근영 2016. 5. 7. 08:18

 

다리 위 북극

 

   이성미

 

 

 

얼음이 땅속으로 송곳니처럼 자라던 겨울,

어떤 문도 닫혔을 때

다른 계절에서 구름이 흘러왔지.

우리를 해빙기로 데려가려고.

구름은 퍼부었어, 대나무 숲 같은 비를.

강의 얼어붙은 심장을

녹이지는 못했지만,

강의 표면에

빗물로 은초록빛 길을 냈지.

피오르드. 노르웨이. 북극.

겨울의 배꼽 위에서 나는 중얼거렸어.

그리고 나를 빠져나와서 나에게 물었어.

문은 어디에 있지.

너는 누구지.

여름에도 가을에도 낚시를 했던 다리 위에서

너는 달라진 얼굴로 나를 보고 웃어.

피오르드. 노르웨이. 북극.

이곳에서도 나타난 너에게 감사해.

너는 새로운 얼굴로,

언제나 똑같은 표정을 짓고,

겨울의 한가운데로 낚싯대를 던지지.

구름은 또 다른 계절로 흘러갔어.

질문할 힘을 잃은 이에게

질문을 선물하려고.

 

 

 

                        —《문학. 선》201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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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미 / 196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 2001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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