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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허니 밀크 랜드의 체크무늬 코끼리 / 유형진

문근영 2016. 5. 6. 07:34

허니 밀크 랜드의 체크무늬 코끼리

 

   유형진

 

 

 

그녀는 사랑이 깨지는 순간을 본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순간을

그녀는 자주 목도(目睹)한다

 

사랑이 어떻게 깨지는지

깨진 사랑이 어떻게 가루가 되는지

가루가 된 사랑이 어떻게 녹는지

녹은 사랑이 어떻게 질척해 지는지

그 질척한 사랑이 그리는 마블링을

목도한다

 

녹아도 녹지 않고

깨져도 깨지지 않는

어떤 알갱이들이 만들어주는

그 오묘한 무늬를

체크무늬 코끼리

그녀는 본다

 

사랑의 마블링을 볼 줄 아는 그녀는

그래서 슬프고 아름다운데

정작 그녀를 아무도 볼 수 없다는 것이

이 세계의 비극

 

허나 이 세계의 비극은 이것 말고도

몇 개는 더 있는데

더 큰 비극은 그 비극을 이야기하기에 시간은

산장에 사는 검은 고양이의 털만큼

셀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시》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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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진 / 1974년 서울 출생. 서울산업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피터래빗 저격사건』『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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