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떼들에 대한 편견
최서진
귓속에서는 다른 사물들이 환청처럼 자란다
눈물이라는 잘린 귀, 비의 소리처럼 풀을 뜯는다
구름의 속도를 가로질러 풀밭의 정거장을 지나
양처럼 얌전하게 순하게
하루는 매일 평화롭고 피부가 더러워지기 위한 놀이를 하고
입술에 묻은 당신들의 목소리를 털어낸다
실컷 빨다가 뱉어 버리는 오후의 캔디처럼
욕망의 근처에서 자라나는 유리창의 실금들
우리는 일제히 건초 더미에 얼굴을 파묻는다
아침이 되면 양 어깨에 수북히 돋아나는 털
이렇게 오래된 놀이에 익숙해지자
파란 하늘에 피어오른 양떼구름이라는 묘사는 사양할게요
혀끝에서 상투적으로 나를 굴리지 말아요
초원의 그림 속에 갇혀버린 양,
가장 맛있는 죽음을 표절하듯 더없이 평온한 표정으로
덧없는 청춘의 한때를 증명하자, 주먹을 받아든 담벼락처럼
이상하고 아름다운 묵장에서 조심스럽게
생각보다 더 가벼운 입을 틀어막고서
우리는 모두 흩어지고 싶은 양과 양떼구름
땅바닥에 떨어진 캔디를 핥아 올리듯
사라지기 위해 울창한 여름이 태어난다
무의미한 관습처럼 매일 풀이 자라고
양의 몸에서 빠져나와 양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詩로 여는 세상》201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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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진 / 충남 보령 출생. 2004년 《심상》으로 등단. 한양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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