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사람
최영철
말수가 뜸한 사람은 윗입술과 아랫입술 교분이 두터운 사람이다 윗입술과 아랫입술 궁합이 딱 맞아떨어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사이를 아무나 함부로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다 정말이지 어쩔 도리가 없어 잠시라도 멀어지면 심심하고 보고 싶어서 입술이 파리해지는 사람이다 잠시 떨어져 헛바람이 둘 사이를 지나가면 금방 침이 말라 죽을지도 모를 사람이다
게으른 사람은 손발과 팔다리의 취미가 고독인 사람이다 소싯적 취미란에 아무 의심 없이 고독이라고 쓴 적이 있는 사람이다 손발과 팔다리가 제 일에 바빠 조금만 흩어져도 눈앞이 캄캄해지는 사람이다 팔다리가 한통속으로 무슨 일을 도모할까 봐 걱정이 태산인 사람이다 보고픈 이도 없고 찾아 나서거나 악수할 이도 하나 없는 사람이다 온 힘을 풀고 손과 발을 허공에 늘어뜨린 채 홀로 묵상하는 척하는 사람이다.
—《문예중앙》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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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 1956년 경남 창녕 출생.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찔러본다』『호루라기』『그림자 호수』『일광욕하는 가구』등과 산문집『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등.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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