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장수 (외 1편)
류인서
너는 바람 장수
아니, 호박 장수
다른 아침에서 온 떠돌이 신발 장수
너는 짐짓 자신의 가슴 안으로 손을 찔러 넣어
쪼그라든 부레를 꺼내 흔들어 보이곤 했다
“알고 있었니 우리가 바다라는 거”
똥그랗게 물고기 눈으로 올려다보는 아이들에게
풍선을 불어주곤 했다
저문 강물 쪽으로 서 있던 사진 속 아프가니스탄의 그 풍선 장수*처럼
너는 자전거 바구니 가득 풍선 다발을 매달고
바다시장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 키다리 풍선 장수
부레 없는 고래가 애드벌룬으로 뜨는 밤
물고기 주둥이 술병과 함께 우리는 노래를 부르지만
딸꾹딸꾹 부레 같은 술병을 안고
번번이 다른 잠이 들지만
————
*「아프가니스탄의 풍선 장수」: AP 통신의 기자가 찍은 것으로 알려진 사진.
색안경
유리창은 접착력을 잃었다
풍경을 먹고 살지 않는다
풍경은 더 이상 나에게서 너에게로 흘러가지 않는다
햇빛에 덴 이파리 한 장의 얼굴만 남아 가장자리부터 들뜨며 오그라들고 있을 뿐
창 안팎의 이야기들 밀반죽처럼 촉촉하게 숨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날개 돋지 않는다
유리창에 비 듣는다
(밥알을 밀어내는 혓바닥처럼 유리창이 퉤퉤 풍경을 뱉어낸다)
비의 타액에 젖은 풍경이 잠시 유리에 매달릴 때
지워지는 세계의 목덜미 위로 느릿느릿 민달팽이 기어간다
펄럭이며 일그러지는 얼굴
미끄러져 내리는 눈길 위로 붙임성 없는 계절이 연탄재와 소금모래를 뿌리며 간다
거리의 청소부가 죽은 풍경을 거두어 가고
고여 있던 남은 목소리들 내 눈동자의 홈통을 지나 하수에 섞인다
얼굴이 사라지고
나는 풍경 밖으로 고립된다
우후죽순 다른 것들이 살러 온다
—시집『신호대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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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서 / 1960년 경북 영천 출생. 2001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여우』『신호대기』. ryuks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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