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北臺) (외 1편)
장옥관
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
얼어붙은 북극 바다를 깨고 나가는 쇄빙선처럼 깎아지른 바위에 얼굴을 묻고 살았다
밤마다 산돼지 울음소리 깊은 골짜기를 달리고
손마디 꺾으면 뒷산 상수리나무 굵은 가지가 툭, 툭, 부러졌다
잔등에 내리는 싸락눈을 맞으며
여물 씹는 늙은 소
긴 속눈썹에 맺히던 물방울
두터운 외투를 입고 밤은 서둘러 산을 내려오고 며칠째 내리는 폭설에 마을은 갇혀
손발 없는 전봇대만 끊어진 길을 이어냈다
발진처럼 부풀어오른 청춘은 가려움만 더해 종이 위 활자는 절뚝거리며 무릎을 꿇었고
얼어붙은 잉크병을 가스라이터로 녹일 때
파란 불꽃이 너인가도 했다
정신은 더욱 맑아져 온몸 뼈마디 관절마다 찬 샘물이 솟았고 허기 견디다 못해
고드름을 잘라 어둠 깨트리면 이윽고
여명이 핏물처럼 번져나왔지
절벽으로 기어코 기어오른 자작나무, 그가 움켜쥔 북벽의 화강암을 쇄빙선처럼 이마로 깨며 나는
바위의 황홀한 가족이 되고 싶었다
———
* 북대(北臺) : 오대산 다섯 고봉 중 북쪽 봉오리. 김도연 작가의 소설 「북대」에서 운(韻)을 얻었다.
혀
혀와 혀가 얽힌다
혀와 혀를 비집고 말들이 수줍게
삐져나온다
접시 위 한 점 두 점 혀가 사라져가면
말은 점점 뜨거워진다
말들이 휘발되어 공중에 돌아다닌다
장대비가 되어 쏟아진다
그렇게 많은 말들 갇혀 있을 줄 몰랐던
혀가 놀라며 혀를 씹으며
솟구치는 말들 애써 틀어막으며
그래도 기어코 나오려는
말들 또 비틀어 쏟아낸다
혀가 가둬놓았던 말들, 저수지에 갇혀 있던
말들이 치밀어올라
방류된다 평생 되새김질만 하던 혀는
갇혀 있던 말들을 들개들이 쏘다니는
초원에 풀어놓는다
—시집『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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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 / 1955년 경북 선산 출생. 계명대학교 국문학과와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졸업.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황금 연못』『바퀴소리를 듣는다』『하늘 우물』『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 동시집『내 배꼽을 만져보았다』. 현재 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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