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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분노의 맛 / 원구식

문근영 2016. 4. 21. 05:18

분노의 맛

 

   원구식

 

 

 

나는 알고 있다,

분노가 설탕보다 달콤한 까닭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이 맛이

혁명의 힘이다. 보라,

세상의 절반은 이 맛으로 세워졌으며

나머지 절반은 이 맛으로 파괴되었도다.

그리하여, 혁명이 지나간 광장에는 언제나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

젊은 남녀들의 청춘이 던져져 있다.

이 얼굴들은 참으로 묘하게

미학적으로 분할되어 있다.

반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으며

나머지 반은 희열로 가득 차 있다.

 

(…죽음의 사제인 검은 까마귀들이

혁명의 눈동자를 파먹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분노가 소태보다 쓰디쓴 까닭을.

중추신경을 흥분시키는 이 맛은

싸구려 히로뽕보다 고약하게 중독된다.

순식간에 모세혈관이 터지고,

도파민이 흘러나와

너무나 미학적으로 육체를 파괴한다. 보라,

주체할 수 없는 관성의 힘이

죽음의 끝에서 확대시키는 저 동공들을.

희디흰 눈자위 사이로

툭툭 터지는 저 붉은 실핏줄들을.

오, 아드레날린보다 빠르게

교감신경을 마비시키는 이 맛!

 

(…혁명의 광장에는 오늘도

시간의 풍차들이 거인들처럼 쓰러져 있다…)

 

나는 알고 있다,

검은 까마귀들이 파먹는 분노의 맛을.

나의 절반을 파괴하는 힘이 나를 외친다.

나는 결코 물에 녹지 않으며

독한 술에도 녹지 않는다.

위산에도 녹지 않으며

창자 속에서도 녹지 않는다.

분노가 불타는 휘발유보다 달콤한 까닭은

이것이 오로지

붉은 핏속에서만 녹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는 누구냐?

우리들 내장 깊숙이 상습적으로

산소와 포도당을 공급하는.

 

 

 

                       —《시인동네》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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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식 / 1955년 경기도 연천 출생. 1979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먼지와의 싸움은 끝이 없다』『마돈나를 위하여』등. 현재 월간 《현대시》와 격월간《시사사》발행인.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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