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은 어딘가로 통과하는 게 아름답다 (외 1편)
송재학
일 센티미터 두께의 손가락을 통과하는
햇빛의 혼잣말을 알아듣는다
불투명의 분홍창이
내 손 일부이기 때문이다
국경이 있는 손바닥은
역광을 움켜쥐었다만
실핏줄 같은 종려 이파리는 어찌 얼비치는 걸까
구석구석 드러나 명암이기에
손가락은 머리 없이 생겨났지
햇빛이 고인 손톱마다
환해서 비릿한 슬픔
손바닥의 넓이를 곰곰이 따지자면
넝쿨식물이 자랄 수 없을까
이토록 섬세한 공소(空所)를 채우는 햇빛이 키우고,
분홍색 스테인드글라스가 가꾸는,
인동초 지문이
손가락뼈의 고딕을 따라간다
—《문학동네》2013년 봄호
울고 있다
장례식장 입구 골목에서 여자가 울고 있다 좁은 골목은 몇 번이나 차들이 뒤엉키면서 비린내를 반복했다 여자의 소복은 가로등에 부담이었다 희부염한 가로등 불빛이 그 울음을 두 손으로 다 움켜쥐지도 못했다 울음이 점점 길어지자 가로등은 한숨 쉬며 등불을 켰다 껐다 반복하면서 여자의 주위를 맴돈다 골목의 그림자가 인중이 더 길어졌다 그 울음 곁에 굴건 쓴 사내가 다가갔다 그리고 금방 여자의 울음이 그쳤다 당신은 당신을 찾는 사람과 닮았다는 말이 얼핏 귓가에 맴돌았다 그 울음이 골목을 벗어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가 당신의 울음이거나 당신이 내 울음이란 요철이 골목에 생겼다고 들었다
—《POSITION》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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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 /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1986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얼음시집』『살레시오네 집』『푸른빛과 싸우다』『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기억들』『진흙 얼굴』『내간체를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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