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나무의 기억
이은유
햇빛은 남쪽으로 기울고 바람은 북방으로 불었지요.
햇빛이 기우는 동안 그곳에는 꽃이 피었다지요.
꽃소식이 들리는데도 이곳에는 땅의 기운이 서늘했답니다.
봄 나무 아래에 앉아 꽃이 피기를 기다렸습니다.
남쪽과 북방 사이의 거리는 새들이 날아간 자리,
나비의 날개와 새의 젖은 깃털처럼 햇빛과 바람 사이는 멀기만 한데
꽃은 피지 않았으므로 일부러 불을 놓았었지요.
봄꽃이 피어나도록 불꽃을 피워 올렸지요.
불길에 북방의 날씨는 따뜻해졌을까요.
불꽃과 봄꽃 사이 남쪽과 북방의 거리는 가까워졌을까요.
꽃나무는 기억합니다.
햇빛이 스며드는 봄날의 말을 불빛이 스러졌다 일어날 때마다
북방의 바람이 대신 전해주고 있었겠지요.
봄 나무는 기억할 것입니다.
불길이 일어나는 동안 그곳과 이곳 사이
하역의 당신으로부터 여기까지 봄 길이 다가오고 있었을 테지요.
—《시와 환상》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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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유 / 본명 이은옥. 1968년 경기도 안성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1996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시집 『이른 아침 사과는 발작을 일으킨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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