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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일(忌日) (외 1편) / 강성은

문근영 2016. 4. 15. 10:26

기일(忌日) (외 1편)

 

   강성은

 

 

 

버려야 할 물건이 많다.

집 앞은 이미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하다.

 

죽은 사람의 물건을 버리고 나면 보낼 수 있다.

죽지 않았으면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를 내다버리고 오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것만 같다.

 

한밤중 누군가 버리고 갔다.

한밤중 누군가 다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창밖 가로등 아래

밤새 부스럭거리는 소리

 

 

 

환상의 빛

 

 

 

옛날 영화를 보다가

옛날 음악을 듣다가

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구나 생각했다.

 

지금의 나보다 젊은 나이에 죽은 아버지를 떠올리고는

너무 멀리 와버렸구나 생각했다

 

명백한 것은 너무나 명백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몇 세기 전의 사람을 사랑하고

몇 세기 전의 장면을 그리워하며

단 한 번의 여름을 보냈다 보냈을 뿐인데

 

내게서 일어난 적 없는 일들이

조용히 우거지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눈 속에 빛이 가득해서

다른 것을 보지 못했다.

 

 

 

                      —《문학과 사회》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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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은 / 1973년 경북 의성 출생. 2005년《문학동네》신인상 당선.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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