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와 연꽃
—백담 시편 15
오태환
애기솔방울만큼 쬐끄만 게 한 마리가 다락같은 연꽃을 덮쳤다
딴전이나 피우며 슬금슬금 꽃대궁을 기어오르더니, 연밥 연근 다 놔두고 정수리까지 기어오르더니, 그 숱한 다리로 다짜고짜 안다리메치기에다가 호미걸이다
하기사 으리으리 흰 연꽃도 서슬엔 꼼짝없이 얼이 빠져 버렸음직한데
녀석은 그 위에서 시치미 딱 잡아떼고 못물에 폭싹 젖은 게딱지째 들썩거리며 품는 재미가 한창이다 걷는발서껀 집게발서껀 는실난실 일일이 내두르는
햐! 허공중의 후배위라니
때 맞춰 얄미운 산들바람도 는실난실 작정하고 불어제껴 쌓는데
이끼 머금은 돌탑 너머 저녁놀빛은 잇바디를 적멸보전 청기왓장 처마 끝까지 드러내고 파안대소다
—《예술가》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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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환 / 1960년 서울 출생. 고려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84년 〈조선일보〉와〈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북한산』『手話』『별빛들을 쓰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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