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늑대
—야생 염소
유미애
급습하는 꽃들, 고원을 눕히고 비린내가 올라탄다 어디에 쓸까 저러고도 남는 힘
벼랑의 식사, 우걱우걱 붉어지는 염소
위태롭다 나비향기, 눈을 감고 딸기를 먹는 야생이란 없지 그것은 삶에 대한 불의, 꽃에 대한 모욕, 이빨 사이 번져가는 만년숲의 울음
제 몫을 채우지 못하고 간 선배들의 발자국이 꽃잎처럼 어룽거릴 때, 전진하는 치마, 달빛 업은 뿔, 흔드는 궁둥이, 서로의 그림자를 의지한다 살아남은 우리의 목표는 오르는 것뿐, 원시의 딸기를 향하여
문득 역행하는 발, 다시 풀밭을 뒹굴고 싶다 야후야후 탄성을 지르며 쫓고 쫓기던 시절 울타리를 뛰쳐나와 피를 흩뿌려주던 아름다운 늑대 나는 암벽 뒤에 숨어 사냥의 노래를 우물거린다
묘령의 나비를 품고 날아가는 바위조각
밥을 삼키다가 물끄러미 벽을 바라보는 저녁 한 발 또 오른다 굴러 떨어지는 툰드라의 달, 미끄러지는 시대의 합창, 왜 이 짓을 하는가 반문하는 순간 생은 균형을 깨트리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꿈꾸는 굴뚝을 지나 집으로 가는 꽃, 늙은 차반*의 나팔 소리 여기는 사선, 나는 짖는 염소, 슬픔의 각도만큼 발가락이 길어진다 쓸데가 없다 야성의 눈물
———
* 양을 치는 사람.
—《미네르바》2013년 봄호
------------
유미애 / 1961년 경북 문경 출생. 2004년 《시인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손톱』.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메모 :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둥근 사이 / 박덕규 (0) | 2016.04.15 |
|---|---|
| [스크랩] 증명사진 / 안정혜 (0) | 2016.04.14 |
| [스크랩] 빈 방 / 박찬세 (0) | 2016.04.14 |
| [스크랩] 귀신의 詩 / 강윤미 (0) | 2016.04.14 |
| [스크랩] 둥근 사이 / 박덕규 (0) | 2016.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