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브런치 / 김 륭

문근영 2016. 4. 6. 07:55

브런치

 

      김 륭

 

 

 

   결론은 나랑 자고 싶은 거야? 그럼 자. 그까짓 게 뭐라고.

 

   침대가 달아났습니다. 교양이 게을러진 마흔, 살 같은 잠이나 더 늘려야 할 나이에 다시 한 여자를 읽습니다. 이러다간 잠은커녕 죽음도 오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지만, 돈 잘 버는 신랑과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꽃잎처럼 동그랗게 앉아 있는 남의 집 식탁 밑으로 손을 집어넣고 밑줄을 긋습니다. 여자는 가지런히 다리를 모읍니다.

 

   뼈만 남은 생선이 될 때까지 울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단추가 반짝거릴 것 같은 여자의 초경 쪽으로 몸을 기울여 피를 뱉어냅니다. 막대 모양으로 딱딱해진 잠을 깨물어보고 싶지만 꿈틀, 여자가 그림자를 뒤집어씁니다. 나는 그림의 떡이에요. 침대나 식탁 위에서 읽을 만한 책이 아니라니까요. 그냥 밥이나 먹어요.

 

   나는 교양 없는 칼과 포크를 슬그머니 내려놓습니다.

 

   가출을 밥 먹듯이 하는 비행소년이 집을 기어들어오듯 죽음이 몸에 착 달라붙는 시간입니다. 가지런히 다리를 모은 여자의 발이 꽁꽁 얼어붙기 전 물이 되어야 하는 나는 춘추전국시대를 휘돌아 여자의 머리카락으로 다시 출근을 합니다. 달아난 침대에서 게으른 식탁까지 엉금엉금 나는 달팽이, 잠이 오면 더 자도 좋아. 여자의 배꼽을 알람처럼 꾹, 눌러줍니다.

 

   빵에 썩긴 싫어. 눈물 좀 시켜주면 안 돼?

 

   여자의 잠에서 흙이 쏟아집니다.

 

 

 

                    —《현대시》2013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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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륭 / 1961년 경남 진주 출생. 2007년〈강원일보〉신춘문예 동시 당선, 2007년〈문화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 시집『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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