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지붕이 있는 성당
노향림
‘모든 떠나간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비 아래 평안과 휴식을 주소서‘
현수막이 한가하게 펄럭이는 성당은 공휴일이다.
흩뿌려진 은총의 모이 쪼아 먹으려고
참새 몇 마리 공중에서 가볍게 날아든다.
그 한켠엔 모자를 쓰고 운동을 나온 노인들
평행봉에 가까스로 매달리거나
회전판에 올라선 채
춤추듯 몸만들기에 한창이다.
비비꼬여 휘어진 등나무 등걸에 弔燈같이
보랏빛 창백한 얼굴로 흔들리는 등꽃들
그 집 골목을 나온
소형 장의차 한 대 소리 소문 없이
텅 빈 길 위를 지나가고
제 몸 멀리 떠메고 가는 사람의 영혼처럼
첨탑의 종소리가
붉은 지붕 너머로 느리게 뒤따라 사라진다.
조객처럼 일렬로 늘어선 풀들은
맨발로 스트레칭도 하며
환한 햇빛만을 데리고 킬킬거린다.
—《예술가》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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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향림 / 1942년 전남 해남 출생.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70년 《월간문학》신인상 당선. 시집『눈이 오지 않는 나라』『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바다가 처음 번역된 문장』등.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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