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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을의 부뚜막들 / 장석주

문근영 2016. 4. 1. 09:16

가을의 부뚜막들

 

   장석주

 

 

 

여름 뜰이 윤리적으로 무너진 뒤

먼 데서 털을 세운 짐승들이 내려온다

 

궁리가 깊은 돌들과

파초가 잘 키운 상그늘 몇을 거느리고

국세청 세무조사팀보다는 덜 무서운 기세로

전무후무한 가을이 기습한 그 저녁,

 

이상한 게 이상한 것뿐이냐고,

쓸쓸한 게 쓸쓸한 것뿐이냐고,

항변하며 가을벌레들이 크게 우는 그 저녁,

 

내가 노동과 생계의 함수관계를 풀다 만 것은

오늘은 이미 내일의 옛날이기 때문.

지나가서는 안 되는 것들이 지나가고

옛날은 자꾸 새로 돌아오기 때문.

 

검은 눈썹이 식는 가을 그 저녁,

우리는 흑설탕을 넣은 차를 마시자.

그동안 적조했었다, 옛날을 다 탕진하고

그늘의 무미함 아래에서

최선을 다해 착해지려는 부뚜막들!

 

 

 

                      —《詩로 여는 세상》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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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 1955년 충남 논산 출생. 1975년 《월간문학》신인상 당선,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햇빛사냥』『완전주의자의 꿈』『그리운 나라』『어둠에 바친다』『새들은 황혼 속에 집을 짓는다』『어떤 길에 관한 기억』『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크고 헐렁헐렁한 바지』『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간장 달이는 냄새가 진동하는 저녁』『물은 천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붉디붉은 호랑이』『절벽』『몽해항로』『오랫동안』.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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