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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당신의 말을 쓰는 마지막 종족 (외 1편) / 권민경

문근영 2016. 3. 31. 07:01

당신의 말을 쓰는 마지막 종족 (외 1편)

 

   권민경

 

 

 

당신이 서투르게 전하는 말

밤의 새들은 목이 쉬었죠

이제는 잘 쓰지 않는 목소리

부스러지는 책에선 나무가 토한 냄새가 나요

나는 등을 두드리며 자장가를 생각해요

공교롭고 기다란 목청으로 부르는 노래

칭얼대는 몸을 잠재워줘요

쪽쪽 뽀뽀하는 소리 잠을 연주하는 손가락

수많은 청각의 숲에서

나는 썩은 둥치를 껴안고 잠들어요

잠결에 들려오는 지난 계절의 말버릇

구텐탁 오늘 밤 우레시이 날씨

꿈을 튕기며 달음질쳐요

속삭이는 낱말과 오리 떼가 지르는 비명

아름다운 화음들은 모두 당신의 말버릇이죠

투명한 지붕 밑에서

나는 나무의 말을 기록하는 마지막 사람

주렁주렁 떨어지는 유일한 이야기

잃어버리지 않게 귓속에 심어둡니다

오래 이야기 나누고픈 의자

의자 위에 놓여 있는 사과 한 알

 

 

 

 불편한 침대

 

 

 

   서늘해지면 귀뚜라미 울음

   풀어도 계속 나오는 콧물

   자꾸 없어지는 우산

   사라진 것들이 모이는 곳

   난소를 잘라 낸 부분은 펄럭일까 어디에 붙어 있을까

   잘 지내는 절단 부위들

   의심 없이 믿는 사람들

   꿈의 논리

 

   사소한 것들이 나를 괴롭히고 나는 자꾸 사소해지고 자꾸 찢기고 닳고 어디까지 마모되나 지켜보자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생을 견디고 견디고 견디고 견디는 사람들한테 치이고 견디고 예고도 없이 찾아온 소행성이 북반구로 다가오듯 자꾸 무언가 다가오는데 서늘한 목소리 내 목덜미에 스며들고 차가운 온도보다 자꾸 쓰다듬는 말소리가 싫어서 종이 사람을 찢어발기고 터지고

 

   무논리

   고가다리

   커브 도는 버스

   1인 병실

   방사선

   위생뼝원으로 읽히는 청량리 위생병원

   오래된 건물의 섬뜩함과 새 건물 차가움

   독립기념관엔 밀랍 인형만 잔뜩

   고통 받는 것들

   손과 발이 닮은 것들

 

 

                      —《詩로 여는 세상》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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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경 / 1982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2011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시 「오늘의 운세」당선되어 등단.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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