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옷 한 벌의 무게 (외 1편) / 김다명

문근영 2016. 3. 30. 02:18

옷 한 벌의 무게 (외 1편)

 

   김다명

 

 

 

개미가 진딧물의 복부를 톡톡 건드린다

진딧물이 복부를 들어올려 배설하는 투명하고 달콤한

액즙,

개미는 그것을 열심히 받아먹는다

 

진딧물은 오로지 개미를 위해 액즙을 내어주는 걸까

개미가 아니더라도

진딧물에게는 찐득찐득한 저것이

꼭 배설되어야만 하는 것이라면,

개미가 진딧물에게는 고마운 존재인가

 

오직 개미의 촉각에만 반응하는 관계,

 

저것을 사랑이라 알고 있는 나와

저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연선택적 본능이라고 하는 너,

사이

 

각자 다른 종의 약한 신체구조를 이용하는 것과 같이

진딧물과 개미도

다른 종의 본능을 이용하려고 노력한 것뿐이다,

라는 다윈의 학설을 믿어야 한다면

 

오늘부터 나는 너라는 옷 한 벌을 벗는다.

 

 

 

옥잠화와 말이 통했다

 

 

 

삼정헌 툇마루에 걸터앉아도

방안에선 말소리 한 톨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는다

 

뜰 한가운데 섰는 향나무 아래

옥잠화 흰꽃들이 무어라 외치는 듯 흔들린다

옥잠화들 수런거리는 소리, 수화처럼 어여쁘다

 

그 묵언 속 잠자는

풍경,

두물머리 건너다보며

강바람에 온몸 부딪쳐 써 나가는 소리의 무늬

눈으로 전해 듣는 이 적요로움

 

잠시,

꾸벅, 졸았나 싶었을 때

아득한 혼잣말처럼 범종소리도 얼핏, 지나갔던가

 

저 옥잠화 통꽃 속에 내 모르는 무슨 일 있었던가?

아득한 저 꽃말을

곰곰 가슴에 새기다가

 

문득, 환해지는 옥잠화,

나도 온몸으로 수화를 나누었다.

 

 

 

                        —시집『옥잠화와 말이 통했다』(2013)에서

--------------

김다명 / 2010년 《문학과 창작》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옥잠화와 말이 통했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