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외 1편)
홍일표
등대는 배가 고픕니다 등대를 어패류로 분류하나요?
땅끝에 서서 바다를 읽습니다 등대는 걸어온 길만큼 매일 자라고 온몸이 빳빳하게 발기된 불기둥입니다
바다는 출렁이며 다가오다 살짝 등을 돌리고 멀어집니다 붉게 달아오른 몸이 빗물에 젖고 불이 꺼진 등대를 해풍이 대신 울다 갑니다 아무래도 등대는 고등동물입니다
저렇게 여러 날 굶은 짐승도 있습니까?
등대는 조금씩 기울어지며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길게 자라는 손톱을 물의 요정들이 다듬고, 파도를 이어 만든 옷자락을 숭어 떼가 들고 따라옵니다
물속에 가라앉은 등대는 이목구비 뚜렷한 태아입니다
등대는 아침마다 태어나 물 밖으로 나옵니다 갓 건져올린 커다란 물고기입니다 온종일 서서 바다를 숨 쉬고 파도로 격동합니다
등대는 오늘도 목마른 불길입니다
—《문예중앙》2013년 여름호
젖은 달
혀가 혀를 넘어섭니다 일찍이 혀는 당신의 불이었고 동굴에 숨어있는 붉은 짐승이었습니다 당신의 밀실에서 울고 있는 어둠의 혈족이었습니다 한없이 자라던 혀가 하늘 밖의 하늘을 핥습니다
물고기로 달아나는 혀를 꿰어 허공에 걸어놓습니다 파닥이던 물고기가 어느 젊은 성자처럼 피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나뭇잎으로 팔랑이는 혀가 공중의 둥근 마음을 핥으며 지상으로 천천히 내려옵니다
목에 걸린 공기가 맨드라미처럼 발갛게 달아올랐습니다 오래 근심하던 구름이 붉고 긴 혀로 서쪽 하늘을 덮습니다 만삭의 하늘이 부화하여 달이 힘껏 솟아오릅니다 혀는 보이지 않고 혀의 마음만 만월입니다 아무도 보지 못한 외경입니다
—《시안》201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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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 1958년 충남 입장 출생.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저서에 시집 『살바도르 달리풍의 낮달』『매혹의 지도』외, 평설집 『홀림의 풍경들』. 현재 《詩로 여는 세상》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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