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대구 무술명 오작비(戊戌銘 塢作碑)

문근영 2016. 2. 19. 03:57

대구 무술명 오작비(戊戌銘 塢作碑)






비 건립 시기를 측정케 해주는 비문 부분


지정 번호; 보물 516

소재지; 대구광역시 북구 대학로 80(산격31370) 경북대학교 박물관

지정일; 1969117

시대; 신라

분류; 석비

내용; 대구 무술명 오작비1946년 대구시 대안동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가 7, 8년 동안이나 행방을 알 수가 없었는데 그 후 다시 경북대학교 근처에서 발견되어 북구 산격동의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오작비가 처음 발견된 대안동은 대구시의 거의 중앙인데 이 지점이 곧 건립 당시의 위치인지 아닌지는 판정하기 곤란하다. 그것은 비신(碑身) 자체가 작으므로 이동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무술명 오작비의 높이는 최대 약 103, 너비는 65.8, 두께는 12이다. 비는 적갈색의 화강암 자연석으로 상단부는 중앙이 높고 좌우로 낮아져서 원호(圓弧)를 이루어 거의 반원형이며, 아랫부분에 이르면서 약간 좁아졌다. 자연석 그대로로 별로 손질을 가한 흔적이 없으며, 명문(銘文)을 새긴 앞면조차도 석면(石面)을 가공한 것같이 보이지 않는다. 개석(蓋石)은 본래 없었던 게 분명하나 대석(臺石)의 유무는 알 수 없다. 현재 오른쪽 하단부가 파손되었는데 본래는 대석을 두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연석이라도 그 윗면에 자리를 파고 비신 하단부를 감입(嵌入) 시켰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명문은 문자의 크고 작음과 간격이 일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각 행까지도 바르지 않고 비뚤어져 있다. 필치(筆致)는 극히 졸박(拙朴)하나 일면 고아(古雅)한 풍이 있으며, 서체(書體)는 북위(北魏)를 방불케 하는 점이 있어 경주의 남산 신성비들과 일치하는 바가 있다. 전문 9행인데 각 행의 잣수가 일정하지 않으며, 마멸된 곳이 많고 또한 석비의 오른쪽 하단부가 약간 파손되어 제3행까지는 1자 정도의 파탈(破脫)이 있는 것같이 보인다.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제1행은 이 석비의 건립 목적을 서술한 것으로 곧 표제(標題)에 해당하니 무수년사(戊戍年四) 월삭십사일(月朔十四日), 영동리촌(冬里村)에 고()를 만들고 기록한 것이다.’라는 뜻이 되겠다. 이것으로 보아 이 석비는 ()’를 축조한 기념비라 할 수 있는데 그 오()의 명칭에 해당하는 ()’()’자 아래 한 자가 빠졌음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특기 사항; 무술명 오작비가 발견된 대구는 고신라나 통일신라시대를 막론하고 국가적으로 중요시되는 도시였으므로 이 곳에 방어 수호에 필요한 ()’를 축조하였던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글자가 상당수 깎여나가 해석을 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있으나 신라시대 수리 시설이나 사회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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