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 멈추고

[스크랩] 경주 독락당(獨樂堂)

문근영 2015. 10. 22. 00:12

경주 독락당(獨樂堂)








정문


외각



담장



담장의 살창


내부에서 본 양진채


편액(옥산정사, 독락당)


옥산정사 편액


사랑채에서 본 살창


사랑 대청에서 살창으로 계류 감상


내부


내부 가구


내부 천장 가구


지정 번호; 보물 413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300-3(옥산리 1600-1)

지정일; 19641114

시대; 조선 중기 중종

분류; 고가[기와집]

내용; 독락당은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위치하며,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 선생의 제사를 받드는 옥산서원(사적 154) 뒤편에 있는 사랑채이다. 이언적 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에 1516(중종 11)에 지어 거처한 유서 깊은 건물이라고 한다.

  독락당은 낮은 기단 위에 세운 정면 4측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측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집을 향해 오른쪽 3칸은 넓은 마루인데 앞을 모두 터놓았으며, 왼쪽 1칸만 칸을 막아 온돌방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원래는 맨 오른쪽 칸도 막아서 방으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어 대청은 가운데 2칸뿐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대청 정면에는 문짝을 달았던 것으로 짐작되는 문설주가 남아 있다. 기둥은 두리기둥[圓柱]을 세웠는데 공포(栱包; 목조 건축에서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에 얹는 부재)는 초익공(初翼工; 창방과 직교하여 기둥머리에 끼이고 보를 받는 익공 쇠서가 한 개로 짜여 진 부재) 계통의 구성과 같고, 기둥 위에 얹은 주두(柱頭)로 직접 대들보와 도리를 받쳤다. 그러나 주두에 꽂힌 첨차(檐遮; 초제공이제공 따위의 가운데에 어긋나게 맞추어 짬)의 형태에는 여전히 주심포집 건축의 전통이 남아 있다. 대청의 뼈대가 모두 노출된 연등천장에서 볼 수 있는 대들보와 그 위의 종량(宗樑)은 제법 형식을 갖추어 다듬어져 있으나, 둘 사이에 받친 대공(臺工)은 양봉형(樑奉形)의 간단한 만듦새이다. 대청과 양쪽 방의 경계에 배치된 양재(樑材)는 인방(引枋)보다 조금 굵은 재목을 사용하고, 그 아래로 기둥머리를 얹은 방주(方柱)로 받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대공은 동자주(童子柱)로 대신하게 하고, 회벽을 쳐서 공간을 막았다.

특기 사항; 독락당 옆쪽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달아 이 창을 통해서 앞 냇물을 바라보게 한 것은 아주 특별한 공간 구성이라 할 수 있다. 독락당 뒤쪽의 시내에 있는 정자 또한 자연에 융합하려는 공간성을 표현했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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